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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물가 상승에 편의점 ‘반사이익’...올해 도시락 시장 3500억 달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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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광 생활경제부 기자) 국내 한 편의점 본사는 7년 전까지 점포에서 폐기하는 도시락 비용 대부분을 대줬다. 도시락이 거의 안 팔려 점주들이 “안 받겠다”고 하자, 본사에서 고육지책으로 ‘도시락 보조금’을 지급했다.

지금은 다르다. 인기 도시락은 재고 확보도 어렵다. 한 달에 100만개씩 팔리는 도시락도 있다. 외식 물가가 큰 폭으로 뛰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도시락 수요가 급증했다. 도시락의 질이 과거보다 크게 좋아진 영향도 있다.

국내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올해 약 35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편의점 도시락 매출 21% 늘어

편의점 도시락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GS25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국내 4대 편의점의 지난 1분기 도시락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21.6% 늘었다. 1분기 편의점 전체 매출 증가율 10% 안팎(추정치)보다 두 배 가량 높다. GS25의 도시락 매출 증가율이 31.4%로 가장 컸고 세븐일레븐(24.1%) CU(19%) 이마트24(12%) 순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2분기 이후 매출 증가율은 더 가팔라 질 것이란 게 업계의 예상이다. 야외 활동이 많은 4~5월은 ‘도시락 성수기’에 해당한다. 올 한해 편의점 도시락 매출은 전년(약 2500억원) 대비 40% 가량 증가한 3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최근 편의점 도시락 매출 증가는 외식 물가 상승이 주된 요인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국민 간식’ 치킨이 한 마리에 2만원 가까이 올랐고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 전문점과 피자집, 김밥집 등도 최근 줄줄이 가격을 올렸다. 잡코리아가 올 초 직장인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외식비 평균 지출액이 점심은 평균 6682원, 저녁은 9604원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편의점 도시락 가격은 3000~4000원대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저렴한 가격에 ‘집밥’ 처럼 먹을 수 있다는 게 도시락의 최대 강점이다.

CU 관계자는 “과거엔 학생들이 주로 도시락을 먹었지만, 요즘엔 직장인이 더 찾는다”고 말했다. 점심 시간, 사무실이 밀집한 곳에 위치한 편의점의 도시락 매출이 특히 늘었다는 설명이다. GS25관계자는 “과거엔 도시락을 일절 구입하지 않았던 택시 기사, 자영업자도 요즘엔 많이 사간다”고 전했다.

◆얇아진 주머니·1인가구 증가 등 영향

국내에 편의점 도시락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그 전에는 유통기한 내 팔리는 도시락이 많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점포마다 구색 갖추기로 1~2개 진열하는 것에 그쳤다.

편의점의 주된 고객층인 10~20대가 편의점 도시락을 많이 찾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2013년 779억원에 불과했던 국내 편의점 도시락 매출은 3년 만인 2016년 2168억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도시락 매출 증가율은 이 기간 연평균 약 60%에 달했다.

‘밀리언 셀러’ 도시락이 나온 것도 이때 쯤이다. 2015년 3월 세븐일레븐이 내놓은 ‘혜리 도시락’은 1년 만에 판매량 2500만개를 돌파했다. 한 달 평균 208만개씩 팔렸다. 그 해 12월 CU가 내놓은 ‘백종원 도시락’은 출시 2주 만에 100만개를 넘겼다. CU 설립 후 27년 만에 처음 도시락이 전체 품목 매출 1위에 올랐다. GS25의 ‘김혜자 도시락’ 또한 이례적으로 판매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세븐일레븐의 ‘내맘대로 도시락’ 등 밀리언 셀러가 속출했다. 편의점들은 ‘도시락 예약제’까지 도입했다.

도시락 시장이 커지기 시작한 때는 청년 실업률이 크게 뛴 시기와 겹친다. 통계청에 따르면 15~29세 청년 실업률은 2012년까지 수 년간 7%대를 유지하다 2013년 8%를 넘었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9%까지 치솟았다. 증가 추세는 계속 이어져 작년에 9.8%에 이르렀다. 한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소득이 없거나 적은 10~20대가 도시락를 사먹기 시작하자 급속도로 확산됐다”고 전했다.

밥 먹는 문화가 바뀐 것도 도시락 판매에 영향을 끼쳤다. 1인 가구 증가, ‘혼밥족’(혼자 밥을 먹는 사람)의 확산이 도시락 판매 증가를 뒷받침 했다. 특히 10~20대는 혼밥 도시락을 ‘놀이’의 소재로 활용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웍스 서비스(SNS)에 인기있는 도시락 사진을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유튜브에는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먹방’이 수 백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일도 있었다.

◆고급 도시락으로 승부

편의점들은 도시락 시장에서 입지를 높이기 위해 재료를 고급화 하고 건강식으로 바꾸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미니스톱은 작년 11월 일본 3대 규동 프랜차이즈 ‘마츠야’와 손잡고 ‘규동 도시락’을 내놨다. 규동은 소고기를 양파와 함께 달게 끓여 밥 위에 올려 먹는 일본 전통 덮밥이다. 3800원짜리 이 규동 도시락은 ‘일본 현지 느낌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니스톱은 해외 유명 프랜차이즈, 국내 맛집 등과 도시락 제휴를 확대할 예정이다.

CU는 지난해 횡성 한우, 생 연어, 홍게 딱지장 등 고가의 재료까지 도시락에 넣어 판매했다. ‘4000원이 넘으면 안 팔린다’는 업계 속설을 깨고 1만원 짜리 도시락까지 내놨다. GS25는 작년 10월부터 모든 도시락 뚜껑을 친환경 재질로 바꿨다. 고온에서도 형태가 변행되지 않고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는 재질이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는 도시락이 많기 때문에 가열 과정에서 유해물질을 우려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또 호텔 셰프 출신을 연구원을 채용하고 식품 연구소를 현재 운영 중이다.

이마트24는 저염, 저지방, 저칼로리가 특징인 프리미엄 건강식 ‘올가니카 클린푸드’를 작년 12월부터 팔기 시작했다. 나트륨 함량이 1일 성인 권장량의 17~24% 수준이고, 지방 함량은 1일 권장량의 5~34% 수준에 불과하다. 열량도 145~560kcal로 가벼운 편이다. (끝) /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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