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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욕 먹는 국회, 웃는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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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휘 정치부 기자) 올해는 헌정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때마침 개헌 논의가 활발하니 2018년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의미있는 한 해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개헌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이 날카로운데 핵심은 현행 대통령제를 어떻게 바꾸냐입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현 정치 시스템을 ‘제왕적 대통령제’로 규정하고, 대통령 권력의 분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국당의 개헌안은 책임총리제로 불리는데 의원내각제에 가까운 모델입니다.

한국당으로선 위기감이 절박합니다. 자칫 13년 간(2017년부터) 정권을 내줄 수도 있는 터라 ‘청와대 권력’에 대한 힘빼기 없이 대통령이 발의한 안대로 개헌이 이뤄지면 큰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5년에 차기 정부가 연임에 성공하면 8년을 더해 총 13년 간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야당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한국당의 개헌안은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 정치 지형의 ‘프레임’이 국회에 매우 부정적인 방식으로 형성돼 왔기 때문입니다. 국회는 욕설과 선동이 난무하고, ‘쪽지 예산’으로 지역구만 챙기는 지역 이기주의가 팽배한 곳으로 인식되곤 합니다. 오죽 했으면 ‘국회의원들은 본인상(喪) 빼고는 욕이든 칭찬이든 언론에 이름이 언급되는 걸 좋아한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이에 비해 대통령은 적어도 취임 초기 때만큼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선량한 위정자’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에 육박하고, 역대 대통령들도 대부분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게 있습니다. 국회 혹은 입법부를 이처럼 폄하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논란입니다. 한국의 의회 민주주의는 역사가 매우 일천합니다. ‘종주국’인 영국이 대략 500년, 미국은 200년쯤 됐다고 보는데 한국은 기껏해야 20여 년에 불과합니다. 군부독재 시절에 국회를 지칭하는 언론의 표현이 입법부가 아니라 ‘통법부’라고 한 것만 봐도 그 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면 국회는 그저 통과만 시키는 기관이란 의미입니다.

‘통법부’ 시절에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 기껏해야 연간 400건 정도였다고 합니다. 요새는 한 해 2만 건 가량의 의원입법이 발의되는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올해만해도 벌써 1만 건을 넘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입법권력의 전성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잊혀질만하면 TV에 생중계되는 ‘국회 난동’ 사건 때문에 국회가 욕을 먹기는 합니다만, 국회는 과거 독재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었습니다. 사법부가 권력의 신하로 전락하던 시절에도 입법부에선 준엄하게 군사 독재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곤 했습니다.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 기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도 국회는 청와대와 행정부의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국회에서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의결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국회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고착된 원인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이 주입한 식민사관도 무관차 않아 보입니다. ‘조선은 붕당 간의 정쟁으로 망했다’는 논리인데 간혹 국회에서 벌어지는 진흙탕 싸움이 옛 붕당의 유산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국회의 구태와 잘못된 관행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입법의 양은 어마하게 많지만 이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관철시키려는 정책 경쟁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청와대는 선(善), 국회는 악(惡)이라는 ‘프레임’이 깨질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끝) /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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