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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지사의 복당 막은 홍준표 대표의 '소신'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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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휘 정치부 기자) 원희룡 제주지사는 몇 안되는 야권의 ‘잠룡’ 중 한 명입니다. 호불호가 엇갈리긴 하지만 도정(道政)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 갈 때만해도 원 지사는 대권을 향한 큰 걸음을 걷고 있었습니다. 비록 중앙 정계에서 멀어지더라도 큰 고을의 수령으로서 자신의 경륜을 ‘목민(牧民)’을 위해 펼치고자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역시 대통령 탄핵이란 대(大)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중앙 중계로 복귀하려던 꿈은 무산됐고, 차선책으로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지사 재도전을 선언했습니다. 자유한국당 복당, 바른미래당 잔류, 무소속 출마 등 여러 선택지가 높여 있긴 합니다만 원 지사는 결국 당적을 버리고 홀로 선거를 치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와중에 지난 3일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발언은 원 지사의 한국당 복당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홍 대표가 ‘4·3 좌익 폭동’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이 제주민심을 자극했습니다. 4월이면 제주엔 제사상을 차리는 집이 열에 한,둘이라고 할 정도로 상처 깊은 제주에 홍 대표가 ‘소신’ 발언을 한 셈입니다.

홍 대표 입장에선 나름 계산된 발언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선거엔 중도가 없다’며 확실한 보수 민심을 잡겠다고 선언한 만큼 양보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홍 대표의 발언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잠룡이라 불리던 원 지사의 한국당 복당을 원천봉쇄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한국당 깃발로는 재선에 성공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로써 홍 대표의 전략은 상당히 뚜렷해진 모양새입니다. 경쟁자를 키우지 않겠다는 의지라는 세간의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방선거에서 자천(自薦)한 후보들이 설혹 패한다고 해도 홍 대표로선 입지에 큰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전망입니다. 홍 대표의 은혜를 입은 후보들이 당선되면 바랄 나위 없이 좋겠지만, 모두 패한다고 해도 비판의 화살을 무위로 일관한 다른 계파 의원들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선 홍 대표의 이런 전략을 ‘폐허 위에서 꽃을 피우려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차피 MB계, 친박계 등 한국당의 주요 계파들은 구태로 낙인 찍혀 있는 만큼 향후 총선 등에서 활용하기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추정입니다. 실제로 현 한국당 의원들의 면면에 대해선 여당에서조차 ‘몸을 던질 분들이 없다’고 할 정도로 대부분 각개약진 스타일입니다. 지방선거 이후 차라리 보수가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홍 대표가 전권을 쥔 상태에서 새로운 인물들을 구할 것이란 일말의 기대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끝) / donghuip@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25(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