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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헬물가'라는데 한은은 저물가를 우려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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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경제부 기자) “지갑이 가볍다” “한 끼 식사도 무섭다”. 요즘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들입니다. 베이커리, 분식점, 중국집 등 자영업·프랜차이즈업을 불문하고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오른 경우가 많아서입니다.

특히 김밥, 햄버거, 짜장면, 샌드위치 등 취업 준비생이나 직장인들이 간단하게 식사로 즐겨 찾는 품목의 가격이 눈에 띄게 오르면서 “월급은 그대로인데 밥값만 치솟는다”는 불만이 더 커진 듯 합니다.

가격 인상의 주된 원인으로는 올 들어 급격하게 인상된 최저임금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들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편의점·프랜차이즈 가맹점 등이 대표적입니다.

맥도날드는 햄버거 등의 평균 가격을 4% 올렸고, 맘스터치·모스버거·롯데리아, KFC, 서브웨이 등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브랜드 들이 가격 인상에 합류했습니다.

편의점을 주로 찾는 소비자들은 더욱 울상입니다. 세븐일레븐은 일부 도시락과 삼각김밥, 샌드위치 가격을 인상했고, GS25도 일부 도시락과 주먹밥 가격을 올렸거든요. 홀로 끼니를 해결하는 이른바 ‘혼밥족’이 늘면서 4000원 안팎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편의점 도시락 시장이 급격하게 커졌습니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사람을 의미하는 ‘편도족’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말입니다.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 뿐만 아니라 최근엔 중장년층도 편의점 도시락을 많이 애용한다고 합니다. 아마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도 한 몫 했을 듯 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물가는 1년 전보다 2.8% 상승했습니다. 서민들이 자주 찾는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 이 수치가 더욱 뛸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선 통화정책 당국자들이 여전히 저(低)물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경기 회복세에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부진해 기준금리 결정 등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결정의 주요 지표로 보고 있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 초중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한은인 목표로 하는 건 2%입니다. 지난 1월엔 전년 동기 대비 1% 상승하는 데 그쳤고, 지난달에도 소폭 오르긴 했지만 1.4%에 머물렀습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중 석유류·농산물 제외지수(근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2% 상승하는데 그쳤습니다. 실제 기준금리 결정을 맡고 있는 한은 금융통화위원들은 모이기만 하면 저물가에 대한 고민을 내놓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통화정책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장에 풀었던 유동성을 거둬들이고 기준금리 수준을 높이고 있는 것이죠.

한국만 이 흐름에서 벗어난다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해외 자금 이탈 등 경제적인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선 인플레이션 압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데 한국만 ‘나홀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부진하다는 건 소비 심리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고, 수요 측면에까지 경기 회복세가 퍼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한 쪽에서는 ‘높아진 물가로 살림살이가 팍팍하다’는 아우성이, 또 다른 쪽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저물가가 고민’이라는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오고 있는 셈입니다. 도대체 체감 물가와 실제 물가 간 괴리가 왜 이리 확대되고 있는 걸까요.

통계청이 조사하는 소비자물가는 일부 품목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중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고,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품목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가격 인하보다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의 가격이 인상되면 체감 물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단순히 통계의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괴리로만 치부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습니다. 체감 물가와 공식 물가 간 괴리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거든요.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꺾였더라도 체감물가 상승률이 높은 상태로 유지되면 가계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내수 회복이 더디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표 물가의 정확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구심이 계속 커지고, 반복되면 결국은 통화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낳게 됩니다. 체감 물가와 공식 물가 간의 간극을 그저 심리적인 문제로 방치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끝) /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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