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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세계 대졸 취업생 더 이상 은행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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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호 선임기자) 일본의 리크루팅 전문기업 디스코가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취업 서베이의 올해 조사에서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10년 이상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직장으로 꼽혀왔던 은행이 4위로 내려앉았던 것이다. 대신 정보 인터넷 서비스 직군이 1위를 차지했으며, 소재·화학과 수산·식품 직군이 그 다음을 차지했다. 1년 사이에 은행의 인기가 폭싹 주저앉은 것이었다.

지난 2월26일 도쿄 메이지대 캠퍼스에서 열린 대형 은행들의 취업설명회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정원 5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설명회장에 불과 260명의 학생들만 참가했다. 지난해에는 500명이 꽉찼으며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들은 학생만 100명이 넘을 만큼 성황이었다. 불과 1년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단기적으로는 일본 은행들이 지난해 감원 계획을 발표한 게 직접적인 영향이었다. 미즈호 미쓰비시 미쓰이 등 일본의 3대 대형 은행은 지난해 가을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마이너스금리 정책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인구 감소 등의 영향으로 은행 업무가 줄어들면서 점포와 인원 감축 등을 시행하려 한 것이다. 대표적인 대형 은행인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은 2026년까지 10년 동안 직원 1만9000명을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은행에 미래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일본 사회의 크나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미국도 영국도 은행은 더 이상 안정된 직장이 아니다. 딜로이트컨설팅이 2015년말 30개국 20만명이상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학생들이 원하는 직종으로 항상 수위를 차지했던 은행들은 소비재 기업들에 밀려났다. 구글과 아마존이 수위를 차지한 건 물론이다. 은행들은 2008년과 비교해 선호도가 4.3%포인트 떨어졌다. 특히 우수한 대학의 경영계열 학생들이 일반 은행은 물론 투자은행도 더이상 찾지 않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 학생 46명 중에서 한 명만 은행을 선호했다는 조사도 있다.

은행원은 20세기 가장 안정된 직업이었고, 은행은 대표 직장이었다. 하지만 그 모델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유럽과 일본 미국 모두 저금리 정책에 의해 예금과 대출의 금리차에서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수익 모델은 더이상 적용하기 어렵다. 최근 수년간 IT와 금융을 조합시킨 핀테크 기업들이 많이 생기고, 성장이 뚜렷한 신흥기업들도 대두했다. 무엇보다 IT기업들이 금융업을 넘보고 있다. 아마존만 하더라도 카드업 등 금융업 진출을 선언한 터다. 현재가 안정적이라 하더라도 미래에 지속 가능한 성장이 없다면 미래는 불안한 기업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IT 벤처는 현재 불안정할 수 있지만 미래가 보장되는 기업들이다. 이런 곳에 학생들이 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 취업전선의 커다란 패러다임 변화다. 4차산업 혁명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이런 변화는 더욱 거세진다. (끝) /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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