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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에 '최후통첩' 날린 브로드컴… 적대적 M&A 대비 1000억달러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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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 14일 첫 인수 논의

퀄컴에 두 번 퇴짜맞은 브로드컴
인수가 1210억달러로 높이고
규제당국 불허시 위약금까지 약속
탄 CEO "최선이자 마지막 제안"

내달 6일 퀄컴 주총서 최종 결정

“퀄컴이 다음달 6일 주주총회에서 우리가 추천한 이사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수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겠다. (그 뒤엔) 갈 길을 가겠다.”


세계 4위 반도체 회사인 브로드컴이 업계 3위 퀄컴에 최후통첩을 날렸다. 14일 양사 간 첫 대면을 앞두고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인수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사실상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서겠다고 공표했다. 인수 제안액만 1210억달러(약 131조400억원)인 이번 M&A가 성사되면 정보기술(IT)업계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된다.

◆사면초가 퀄컴에 M&A 제안

탄 CEO는 12일(현지시간) CNBC방송에 출연해 “내 제안은 최선이며 마지막”이라며 “퀄컴 이사회가 주총에서 인수안에 동의하길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가 퀄컴에 인수를 제안한 건 작년 11월6일이다. 경영권 프리미엄 28%를 얹은 값인 1030억달러에 사겠다는 것이었다.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무선주파수(RF)칩 등 각종 통신반도체와 관련 장비를 생산하는 브로드컴은 4·5세대 이동통신 기술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서 독보적 기술을 보유한 퀄컴을 사들여 세계 최고 통신반도체 회사가 되겠다는 구상이었다.

퀄컴은 몇 년 전만 해도 M&A의 타깃이 될 회사가 아니었다. 스마트폰 시대에 모뎀칩과 AP를 결합한 ‘스냅드래곤칩’을 앞세워 승승장구했다. 매출은 2010년 109억달러에서 2014년 264억달러까지 급증했다. 하지만 2016년 한국에서 1조300억원 등 각국에서 막대한 반(反)독점 과징금을 부과받은 데다 최대 고객인 애플과 소송까지 벌이며 주가가 급락했다. 그 틈을 노려 브로드컴이 M&A에 나선 것이다. 탄 CEO는 “퀄컴은 지난 1년간 주가가 11% 떨어졌지만 브로드컴은 6배 올랐다”며 “퀄컴 주주들은 몇 년 전보다 나아졌느냐”고 반문했다.

퀄컴은 브로드컴의 제안을 거부했다. 회사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는 이유에서다. 작년 12월 브로드컴이 추천한 이사 선임안도 거부했다.

◆거부하는 퀄컴, 압박하는 브로드컴

브로드컴은 지난 5일 인수가를 1210억달러로 높였다. 퀄컴이 “각국 반독점당국의 허가를 받기 어렵다”며 또다시 거부하자 브로드컴은 “만약 허가를 얻지 못해 M&A가 불발되면 위약금 80억달러를 주겠다”고 추가로 제안했다. 탄 CEO는 “나는 절약하는 사람인데 80억달러를 아무 생각 없이 제안했겠느냐”고 강조했다.

브로드컴은 인수자금 약 1000억달러를 JP모간, 모건스탠리 등 12개 금융회사에서 대출받기로 했다. 또 오는 3월6일 퀄컴 주총에서 이사를 교체하기 위해 주주를 설득하고 있다. 탄 CEO는 “지난 두 달간 퀄컴 주주 대부분을 만났고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퀄컴과 브로드컴은 14일 처음 만나 인수 제안에 대해 논의한다. 만남을 앞두고 양사는 의결권 자문사인 ISS, 글래스루이스와 사전 접촉해 ‘왜 자신이 주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지’ 설득에 나설 예정이다. 의결권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잇단 M&A로 몸집 키워온 탄 CEO

이번 M&A 시도를 간단히 볼 수 없는 건 브로드컴과 탄 CEO가 걸어온 이력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출신인 탄 회장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사,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이다. 벤처캐피털과 펩시, 제너럴모터스(GM) 등에서 근무했으며 2006년 싱가포르 반도체 회사 아바고의 CEO를 맡았다.

미국 사모펀드 실버레이크와 KKR이 휴렛팩커드의 통신칩 사업 일부를 인수해 세운 아바고는 이후 기업공개로 자금을 모아 독일 인피니언, 미국 LSI 등 굵직한 반도체 회사를 잇따라 사들였다. 그 절정이 2015년 미국 브로드컴을 인수한 것이다. 370억달러를 투입해 자신보다 큰 브로드컴을 사들인 아바고는 사명을 브로드컴으로 바꿨다. 세계 4위 반도체 회사의 탄생이었다. 본사는 싱가포르에, 운영본부는 브로드컴 본사가 있던 미국 실리콘밸리에 뒀다.

그다음 M&A 목표가 퀄컴이다. 퀄컴 인수 계획을 세우던 탄 CEO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법인세 감세 추진을 언급하며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행정당국의 반대까지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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