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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디벨로퍼 원조 정세권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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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건설부동산부 기자) 어느 분야든 선구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존경받는 선배가 롤모델이 됩니다. 흔히 디벨로퍼로 불리는 부동산개발업계는 어떨까요.

최근 몇년간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구가했습니다. 업계에서는 2012년부터 주택 시장이 반등해 5년간 거침없이 상승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이 때 디벨로퍼들도 쑥쑥 성장했습니다. 엠디엠 신영 피데스개발 HMG 네오밸로 화이트코리아 …. 이와 함께 한국부동산개발협(KODA)도 회원사가 최근 3년 새 두배가량 불어났습니다. 현재 600개가 넘습니다.

이런 디벨로퍼들이 외형은 커갔지만 사회적인 인식은 이에 못 미칩니다. 물론 정부가 개발업, 리츠 등을 묶어 부동산산업으로 부르고 이들 산업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수치적으로 알리는 등 점차적으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산업 종사자는 43만여명이고 국내총생산(GDP)에 차지하는 비중은 5%가 넘습니다. 결코 무시못할 산업입니다.

이들 개발업체들이 존경할 만한 국내 디벨로퍼의 원조를 찾았습니다. 바로 일제시대 ‘건축왕’으로 불리는 정세권 선생(1888∼1965)입니다.때마침 지난해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이마)도 펴냈습니다. 서울시도 북촌 등 한옥 마을의 과거를 살펴보다가 정세권 선생의 업적을 기리게 됩니다.

김 교수님의 책에 따르면 정세권 선생은 1888년 경남 고성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부동산개발회사 ‘건양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서울의 북촌, 즉 청계천 이북 지역을 주목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제가 계획적으로 북촌 진출을 시도하면서 조선인들의 주거 공간을 위협했을 때입니다. 총독부를 북촌으로 이전하고, 총독부ㆍ경성부청 관사와 동양척식회사 직원 숙소 등을 인근에 지었습니다. 하지만 정세권 선생이 북촌에 한옥지구를 개발함으로써 조선인들의 주거 공간을 지켜냈습니다.

1920년대 익선동 166번지 개발을 시작으로 가회동ㆍ삼청동 일대 북촌 한옥마을을 만들었습니다. 봉익동ㆍ성북동ㆍ혜화동ㆍ창신동ㆍ서대문ㆍ왕십리ㆍ행당동 등 경성 전역에 근대식 한옥 단지를 조성했습니다.한 해에 300여 채의 신규 한옥을 공급할 만큼 회사가 커졌습니다. 그는 열심히 번 돈을 조선물산장려운동 등 애국활동에 썼습니다.

서울시와 부동산개발협회 건설협회 등이 정세권 선생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벌이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에 국내 부동산 시장을 지키려고 한 정세권 선생 같은 디벨로퍼가 더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끝) /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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