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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한은맨'이 신입직원에게 꼭 당부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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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경제부 기자) 4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표정은 평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스타일이지만 이날만큼은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한은 41년 후배들을 바라보면서입니다.

이날은 올해 한은에 첫발을 내디디게 된 신입직원 입행식이었습니다. 약 6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신입직원들이죠. 70명의 신입직원을 바라보는 이 총재의 마음이 남달랐을 듯 합니다. 이 총재는 1977년에 입행해 41년간 ‘한은맨’으로 살아온 뒤 오는 3월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이날 환영사에선 어느 때보다 더 애정과 진심이 묻어나는 듯 했습니다. 이 총재는 우선 치열한 관문을 뚫고 온 신입직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늘 그렇듯 신입직원의 입행식은 제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선배로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 총재는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한은은 이제 가정 이외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터전”이라며 “한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한은의 발전과 동료와의 화합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인재상에 대한 얘기도 더했습니다. 그는 “신입직원 채용은 미래의 한은을 이끌어 갈 인재를 선발하는 것인 만큼 엄정하고도 세밀한 검증과정을 거치도록 했다”며 “학술지식도 중요하지만 조직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자세와 합리적인 사고능력을 보다 중시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이 총재가 신입직원들에게 무엇보다 강조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목표와 야망이었습니다. 그는 “조금은 높다 싶을 정도의 목표를 늘 갖고 있기를 바란다”며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야망은 삶의 동력이며 조직의 활력소”라고 언급했습니다. 또 “장군이 될 생각이 없는 병사는 좋은 병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가장 주된 원인은 현실에 안주한 나머지 한 단계 더 나아갈 열정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이 총재는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면 부단히 앞을 내다봐야 한다”며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2~3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늘 그려보고 준비해 나갈 것을 당부한다”고 했습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갈수록 불확실하고 복잡해지는 걸 감안한 듯한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는 “거시경제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은에 거는 기대가 날로 커지고 있다”며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직원 개개인의 전문성이 뒷받침 돼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고도의 전문성은 결코 단기간 내 길러질 수 없는 만큼 부단히 자기계발이 요구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거울나라의 앨리스’ 얘기도 꺼냈습니다. “‘제 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고 뛰어야 한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하는 말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이미 앞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기 마련입니다. 적어도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계속 뛰어야 합니다.”

이 총재가 자기계발과 함께 강조한 건 자기절제였습니다. 그는 “한은은 한국의 중앙은행”이라며 “중앙은행의 힘은 권력이 아닌 국민의 신뢰로부터 나오며 이 같은 국민들로부터의 신뢰가 바로 중앙은행의 존립기반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일반 직장인들과 차별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사명감을 요구하고 있다”며 “엄정한 자기관리와 과욕을 다스릴 줄 아는 절제력을 보여줘야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총재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로 개인의 이익보다 조직의 목표와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며 “신입직원들이 한은의 새로운 활력이 돼주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41년 한은 생활을 오롯이 담아서인지 이날 이 총재의 환영사는 유난히 신입직원들에게 큰 울림을 준 듯 했습니다. (끝) /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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