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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불붙는 적정 외환보유액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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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경제부 기자) 외환위기를 겪은 지 올해로 20년이 됐습니다. 경제 전문가 중 그 누구도 이제는 ‘외화유동성이 부족해 또 다시 외환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진 않습니다.

실제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세계 9위 수준에 달합니다. ‘외화 실탄’이 그만큼 넉넉해 졌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적정 외환보유액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배경을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북한은 지난 8월 말부터 미사일 도발로 지정학적 위험을 키우고 있습니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로 한때 주식시장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며 불안감을 증폭시켰습니다. 이런 와중에 중국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외교 갈등을 이유로 한국과 만기가 지난 통화 스와프 계약 연장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중국마저 ‘외환 안전판’인 통화 스와프 계약을 중단할 수 있다는 우려에 적정 외환보유액 논쟁이 다시 불거지게 된 겁니다.

이미 위기가 발생해도 충분한 수준의 외환보유액을 확보했다는 의견과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현재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붙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지난 10일 공개한 지난달 21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금융안정 상황 점검) 의사록을 보면 해외 투자자들의 향후 움직임을 우려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한 금통위원은 “글로벌 투자회사들이 북한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에 대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며 “외국인 주체별 투자의 특성과 움직임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해외 투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을 경고한 발언이었습니다.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은 유난히 외부 변수에 취약합니다. 경제 체질과 무관하게 각종 외부 변수에 따라 금융시장이 요동치기 일쑤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더 크고, 더 많은 ‘외환 안전판’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최근 오정근 건국대 금융·정보기술(IT)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20년, 평기와 정책과제’ 세미나에서 “지금 대외 환경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며 “유동외채, 외국인 주식 투자금, 통계에 잡히지 않는 외환자금 등을 다 고려하면 외환보유액은 지금보다 1300억달러 이상 더 필요하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외환당국의 생각은 다릅니다. 불필요한 논란이라는 말이죠. 급격한 자본유출 가능성도 낮고 지난 8월 말 기준 3848억달러인 역대 최대 규모의 외환보유액도 충분하다는 주장입니다. 한·중 통화 스와프 문제가 아니더라도 연내 미국 중앙은행(Fed)의 보유자산 축소와 추가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전망이라 당분간 적정 외환보유액 논쟁은 계속 될 듯 합니다. (끝) / kej@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1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