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취재 뒷 얘기

중국에선 구걸도 QR코드로...신용카드 뛰어넘은 LTE 시장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정채희 한경비즈니스 기자) “죄송하지만, 신용카드는 받지 않습니다.” 중국의 인사동으로 불리는 베이징 시내 난뤄구샹은 베이징의 가장 오래된 골목 중 하나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하지만 난뤄구샹을 찾는 이들이 알아둬야 할 게 있으니 바로 결제 수단이다.

기념품을 사기 위해 신용카드를 건넸다간 난처한 답변을 듣기 일쑤다. 이 거리 대부분의 상가는 현금 아니면 모바일 간편 결제, 즉 QR코드(2차원 바코드) 결제만 취급하고 있다.

어디 난뤄구샹뿐이랴. 베이징 시내를 비롯한 중국 1선 도시(상하이·선전 등)에서 신용카드는 1순위 결제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현금 역시 천덕꾸러기 신세다. 중국 화폐인 인민폐의 위조지폐가 많이 유통되다 보니 상인들조차 현금을 선호하지 않는다.

현금을 건네면 위조지폐 감별 기계에서 검수를 거치거나 상인들이 만져보고 비춰보는 등의 감별 과정을 필수로 거쳐야 한다. 그렇다 보니 상인들은 곧바로 한마디를 더 꺼낸다. “즈푸바오(알리페이)나 웨이신즈푸(위챗페이) 없어요?”

◆현금 없는 사회 이끄는 쌍두마차

14억 명의 소비 시장, 중국이 전 세계 모바일 지급 결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디지털 금융 서비스의 성장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아이리서치차이나에 따르면 2016년 중국 모바일 지급 결제 시장 규모는 5조5000억 달러(약 6317조원)를 기록했다. 이는 1조1200억 달러(약 1287조원) 규모의 미국 모바일 지급 결제 시장 대비 약 5배다.

이 커다란 전자 결제 시장을 이끄는 쌍두마차는 중국의 정보기술(IT) 업체인 알리바바와 텐센트다. 2004년 알리바바가 미국 페이팔과 유사한 형태의 지급 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를 출시한 이후 독점하다시피 한 중국 모바일 지급 결제 시장에 인터넷 기업 텐센트가 2013년 뛰어들면서 알리바바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텐센트는 알리바바보다 10년이나 늦은 후발 주자이지만 자사의 모바일 간편 결제 서비스인 텐페이를 8억9000만 이용자가 사용하는 중국 최대 모바일 메신저 위챗에 연동함으로써 위챗페이를 시장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신금융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4분기 기준 알리페이의 시장점유율은 54%, 위챗페이의 시장점유율은 37%다. 1년여 전인 2015년 3분기만 해도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71%, 16%였다. 유니온페이·이페이·바이두월렛 등의 기타 전자 결제 수단은 9%에 불과하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불러온 현금 없는 사회는 중국인 생활 전반에 혁신을 가져 왔다. 결제·송금 등의 금융 서비스 영역 외에도 QR코드를 이용한 전자 결제가 다양한 부문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중국인의 24시간을 파고들었다.

자판기나 관광 명소 앞 생수를 파는 1인 노점상부터 백화점 내 대형 매장까지 QR코드를 통한 전자 결제가 보편화돼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점자처럼 생긴 QR코드를 찍으면 간편 결제 계좌에서 특정인에게 돈이 빠져나가는 식이다.

최대 명절인 춘제(한국의 설)에도 모바일로 디지털 세뱃돈을 건넨다. 중국에서는 붉은 봉투에 세뱃돈을 건네는 풍습을 ‘훙바오(紅包)’라고 하는데 올해 춘제 기간에 텐센트의 위챗 계좌를 통해 전달된 훙바오는 630억 개에 달했다. 이 기간 위챗페이를 통해 이체된 자금 규모만 460억 위안(약 8조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걸인도 QR코드로 구걸한다’는 말은 중국 전자 결제의 대중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실제 베이징 지하철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QR코드를 스캔해 송금을 요청하는 걸인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친구 추가를 요청하는 벤처 사업가를 마주칠 수 있다. 거리 공연(버스킹)을 하는 악사들 역시 QR코드로 송금받기를 원한다.

공유 자전거를 탈 때도,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할 때도 QR코드가 쓰인다. 집 앞에서, 대학가에서, 관광지 등지에서 QR코드를 통해 24시간 음식을 배달받는 모습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최근에는 이 QR코드를 이용한 ‘점원 없는’ 음식점도 늘고 있다. 테이블 매장마다 QR코드를 붙여 스마트폰 스캔을 통해 주문하고 바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각자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면 되니 ‘더치페이’할 때도 유용하다.

이처럼 생활 전반에서 전자 결제가 이뤄지고 있지만 처음부터 중국의 지급 결제 수단의 변화를 예단한 이들은 드물었다.

“카드가 중국의 주요 지불 결제 수단으로 성장한다면 중국 카드 시장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 될 것이다.” 한국의 여신금융협회는 2013년 중국 카드 시장의 현황과 과제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소매 지출 대비 카드의 비율이 60%를 넘는 반면 중국은 2011년을 기준으로 39%에 불과하다”며 “중국 카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는 중국 디지털 금융 서비스의 성장 속도를 오판한 결과였다.

◆사후 규제로 산업 육성 보조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까지 중국의 1인당 신용카드 보유 수는 0.02장에 불과했다. 2014년 기준으로도 중국의 1인당 신용카드는 0.33장으로 미국(2.97명) 등 선진국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 인구 10만 명당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와 은행 지점 수 역시 미국은 각각 173.43개, 35.2개였던 것에 비해 중국은 37.51개, 7.7개에 그쳤다.

하지만 오히려 이 차이가 중국에 절호의 기회를 줬다. 현금을 대체하는 결제 수단이 신용카드 중심인 선진국과 달리 중국은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아 IT 기업 중심의 지급 결제 서비스인 핀테크 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윤숙 한국은행 중국경제반 과장은 지난해 펴낸 ‘중국 핀테크 산업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국 내 핀테크 기업들이 자국 인터넷 및 모바일 보급률이 빠르게 높아지는 반면 기존 금융 인프라가 낙후된 점을 활용해 단기간에 전통적 금융 서비스를 대체하는 핀테크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핀테크 산업에 우호적인 정책 환경도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는 것을 도왔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핀테크 산업에 대해 사전적 승인보다 사후적 규제를 선호하는 방침에 따라 네거티브 방식으로 핀테크 산업을 규제했다.

쉬밍치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중국 정부가 사전 규제를 강화하면 핀테크 산업의 성장을 저해할 것을 우려해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관망적 자세를 보인 것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14억 명의 내수 시장과 중국 정부의 우호적인 정책에 힘입어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중국의 전자 결제 플랫폼을 주도하는 대형 IT 업체들은 이제 자국 시장을 넘어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소비 시장에서 모바일 결제 주도권을 쥐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IT 업체에 투자하거나 자사 결제 시스템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아시아 지역의 ‘현금 없는 사회’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9월 25일 “다수의 신흥 국가들엔 애플의 애플페이와 구글의 안드로이드페이를 사용할 수 있는 포스(POS) 기기가 보편화돼 있지 않다”며 “또한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신용카드 혹은 체크카드를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QR코드를 이용한 중국 모바일 결제 시스템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은 이제 막 현금 없는 사회의 초기 단계에 돌입했다. 여전히 국내에서 이용 비율이 가장 높은 지급 수단은 신용카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현금 이용률이 13.6%인 반면 신용카드(54.8%)와 체크·직불카드(16.2%)의 이용률은 71.0%다.

계좌이체(15.2%)와 전자화폐(0.2%) 비율은 아직 낮은 편이다. 최해웅 북경한국중소기업협회 회장은 “중국 1선 도시는 전자 결제를 활용한 온라인 쇼핑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네거티브 방식으로 사업을 키우는 중국과 달리 한국은 이해관계인들이 너무 많고 통치자의 권한이 좁다 보니 상대적으로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국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끝) / poof34@hankyung.com (출처 한경비즈니스 제 1141호)

오늘의 신문 - 2024.03.2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