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취재 뒷 얘기

북핵실험 와중에 주도권 싸움 벌인 기관들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고경봉 경제부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8일 남재철 기상청장과 신중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다. “미숙한 대응과 기관간 혼선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상급기관인 환경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도 관련 사항을 철저히 점검·감독하라고 지시했다. 총리가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에 엄중 경고한 것은 현 정부 들어 처음이다.

두 기관이 경고를 받게 된 이유는 5일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지난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해 인공지진이 발생했고 8분후 2차 지진이 뒤따랐다. 당시 중국 지진국은 2차 지진으로 지반 붕괴에 따른 대규모 함몰이 감지됐다고 밝혔고 미국도 지진 발생 사실을 파악했지만, 우리 기상청은 “2차지진이 없었다”고 발표해 논란이 일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2차 지진 발생을 인지해 사전에 기상청에 알렸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지질연의 통보를 받았으면서도 이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셈이다. 기상청은 이틀 후에야 “2차 지진이 있었고 추가분석이 필요해 지진 발생에 대한 발표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총리가 기상청에 경고를 한 이유는 기상청이 거짓말을 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추가 분석이 필요했으면 그 사실을 밝힌 후에 시간을 두고 발표했으면 됐을텐데 덮어놓고 ‘지진이 없었다’고 말해 국민 신뢰를 깨트렸다는 이유다.

지질연에 대한 경고는 업무 일원화를 어겨서다. 지진이 발생하면 관련 분석결과를 지질연이 아닌 기상청이 발표하도록 관련 법에 규정돼있다. 하지만 지질연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지질 발생 사실을 인지했었다”고 알린 죄다. “지진 발생 사실조차 몰랐다”는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기상청이 잘못했지만) 우리는 죄가 없다”고 항변한 셈이다. 결국 기상청은 지질연이 제공한 자료를 무시했고, 지질연은 발표 권한을 가진 기상청을 무시했다.

북한 핵실험이라는 커다란 대외 이슈가 발생한 상황에서 양 기관의 엇박자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키우는데 크게 한몫했다. 안그래도 ‘북한이 핵폭탄을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데, ‘핵폭탄이 사용되더라도 정부가 사전에 파악하거나 대응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닐까’하는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과학계에서는 두 기관의 엘리트 의식과 주도권 다툼이 벌인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도 “두 기관은 이전부터 업무영역을 놓고 갈등이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두 기관은 2015년 지진관측법이 시행되자 업무 영역을 조정하는 내용의 상호 협약을 체결했다. 그 기간이 지난 7월 만료됐지만 아직까지도 연장을 하지 않고 있다. 두 기관의 기저에는 ‘밥그릇’을 뺏길 수 있다는 경계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끝) /kgb@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24(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