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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억원 적자 회사를 13조원에 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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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락근 바이오헬스부 기자)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사 길리어드가 생긴 지 10년도 되지 않은 벤처기업을 119억달러(약 13조40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바이오 벤처기업 카이트 파마가 인수 대상이었는데요. 길리어드는 카이트 파마의 지분을 시장거래가보다 29.4% 비싼 가격으로 매입할 정도로 적극적이었습니다. 길리어드는 지난해 올린 매출이 304억달러(약 34조 2000억원)였습니다. 반면 지난해 카이트 파마의 매출은 2220만달러(약 248억원)에 불과했고 심지어 2억6700만달러(약 3004억원)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길리어드라는 공룡은 왜 적자를 내고 있는 작은 회사를 인수했을까요?

당연한 이유겠지만 바로 카이트 파마가 갖고 있는 잠재력 때문입니다. 2009년 이스라엘 출신 의사 아리 벨더그룬이 설립한 이 회사는 꿈의 항암제라고 불리는 ‘CAR-T 치료제’ 전문 기업입니다. CAR-T 치료제란 면역세포를 변형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치료제입니다. 환자에게서 면역세포를 추출한 다음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설계한 후 다시 환자 몸에 주입하는 방식이죠. 다른 항암제와 달리 정상 세포의 손상은 줄이면서 암 세포를 효과적으로 없앨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정식 판매 허가를 받은 CAR-T 치료제는 아직 없습니다. 그야말로 최첨단 치료제입니다. 카이트 파마가 막대한 적자를 올린 것도 아직 ‘개발중’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연구개발(R&D)부터 임상시험까지 하는 데 조(兆) 단위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게다가 CAR-T 치료제는 기존 의약품과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죠. 하지만 개발에 성공만 하면 그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제약사들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CAR-T 치료제의 가격이 환자당 30만~50만달러(약 3억~5억원) 정도로 책정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억’ 소리나는 가격이지만 임상시험에서 기존 항암제로 가망이 없는 환자들이 효과를 봤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어 수요는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카이트 파마는 이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평입니다. 적용 대상 질환이 다르긴 하지만 세계 최대 매출을 자랑하는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와 세계 최초 CAR-T 치료제 개발을 놓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노바티스가 가장 빨리 시장에 CAR-T 치료제를 내놓을 거라고 예상하지만 카이트 파마가 개발 중인 CAR-T 치료제도 조만간 출시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카이트 파마를 인수한 게 길리어드라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길리어드는 인수합병(M&A)을 통한 미래 먹거리 찾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지금까지 총 15개의 바이오 제약 관련 기업을 인수했습니다. 2011년에는 C형 간염 치료제를 개발하던 벤처기업 파마셋을 110억달러(약 12조원)에 인수해 시장을 놀라게 했습니다. 길리어드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파마셋이 개발중이던 C형 간염 치료제는 2013년 미 FDA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고 여태까지 길리어드에게 수십조원을 벌어다줬습니다. 지난해 길리어드가 올린 매출의 절반 가까이가 C형 간염 치료제 판매에서 나왔습니다.

다만 후발 주자들이 속속 C형 간염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C형 간염 치료제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점점 줄어드는 게 길리어드의 고민이었습니다. 얼마 전 발표된 올해 2분기 실적을 보면 길리어드가 C형 간염 치료제로 올린 매출은 29억달러로 전년 동기(40억달러)보다 줄어들었습니다. 길리어드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섰고, 그게 CAR-T 치료제였던 겁니다.

머지 않아 CAR-T 치료제는 상용화될 겁니다. 카이트 파마가 파마셋이 그랬던 것처럼 길리어드에 돈다발을 물어다 줄 것인지. 길리어드의 선택이 이번에도 옳았을지. 재밌는 관전 포인트입니다. (끝)/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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