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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고소득자·대기업만 증세하는 건 국민 편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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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인터뷰

"근로자 절반 세금 한푼 안내는 문제 바로잡아야"
'8·2 대책' 불가피한 측면 있지만 공급대책 빠져 있는 건 문제
최저임금 인상 속도 1년 후 결정? 대한민국 경제가 실험 대상인가
박근혜 정부서 잘한 건 성과연봉제…'비정규직 제로'는 정치적 구호

“문재인 정부가 뜨거운 심장을 갖고 있지만 차가운 머리로 접근하지 않으면 돈키호테밖에 안 됩니다.”

노무현 정부 금융감독위원장, 이명박 정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윤증현 전 장관(71)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매우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두 시간 가까운 인터뷰 내내 “걱정스럽다” “안타깝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8월17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윤 전 장관을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 서민, 중산층 증세는 없다. 증세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으로 한정하겠다’고 했습니다.

“국민을 편 가르기 하는 겁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세금을 더 내는 건 당연하지만 소득이 적은 사람도 능력껏 세금을 내는 국민 개세주의(皆稅主義)가 기본이에요. 그렇게 하고 소득이 적은 사람은 낸 세금보다 많이 돌려받도록 복지를 늘려야죠. 어떤 계층은 계속 내고 어떤 계층은 계속 받도록 하겠다는 건 표를 의식한 정치적 접근이에요. 정말 잘못된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앞으로 5년간 이 정부를 이끌어갈 세제 밑그림이 먼저 나왔어야 해요. 공약 이행에 5년간 178조원이 필요하잖아요. 지난해 조세부담률이 19.4%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25%예요. 이걸 임기 내 얼마로 높여갈지 계획을 내놓고, 그렇게 하려면 세금을 어떻게 하겠다는 로드맵부터 제시해야죠. 그런 것 없이 불쑥 ‘돈 많은 사람, 이익 많은 기업이 내라’고 하면 세금 내는 사람이 승복하겠습니까.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번 법인세 인상은 이명박 정부 때 인하한 걸 제자리로 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소규모 개방경제인 데다 남북이 대치하잖아요. 국제적 흐름에 발을 맞춰야 해요. 세계 각국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를 내립니다. 미국 같은 나라도 그런다고 하지 않습니까. 법인세를 더 걷어야 한다면 명목세율이 아니라 실효세율을 올리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정부 계획대로 법인세를 올려봐야 연 2조6000억원 정도 더 걷히는데, 각종 비과세·감면은 대략 연 30조원이나 됩니다.”

▷야당도 고소득자 증세는 검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근로자 거의 절반이 세금을 한 푼도 안 내잖아요. 이 문제부터 논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을 그리스 꼴로 몰고 가는 겁니다. 우리 국민을 스포일시키는(망치는) 거예요.”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에서 지난 수년간 집값 상승 원인을 투기 수요로 진단했습니다.

“수요 쪽에서 보면 투기 수요도 분명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수요자는 억울할 수 있지만 부동산 과열을 막기 위해 8·2 대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수요 쪽 대책은 총출동했는데 재건축 규제 완화 같은 공급 대책은 빠져 있다는 거예요. 노무현 정부 때도 공급 대책이 부족했는데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좋겠어요.”

▷보유세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거래는 원활하게, 보유는 무겁게’가 원칙입니다. 거래세를 완화하고 재산세를 올려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면 부담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표 계산 때문인지 보유세를 올리는 문제가 빠져 있어요.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느냐는 얼마만큼 정치적 동기를 배제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증원(5년간 17만4000명) 계획은 어떻게 보십니까.

“앨프레드 마셜이 경제학을 하는 사람은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머리를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일자리를 놓고 보면 뜨거운 심장을 가진 정부가 탄생한 것은 틀림없어요. 그 점은 높게 평가합니다. 그러나 차가운 머리 쪽으로 생각해보면 이건 아닙니다. 차가운 머리로 접근하지 않고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돈키호테밖에 안 됩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만드는 거예요. 정부가 창출하는 건 국민이 세금으로 부담해야 해요. (많은 사람이) 일거리와 일자리를 착각하는데 일자리는 일거리가 있으면 저절로 생깁니다. 지금 공무원 늘리는 건 일자리를 늘리면 일거리가 늘어나는 줄 아는 거예요. 일자리를 늘리려면 결국 경제가 성장해야 해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서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그래서 애로가 있어요. 성장하면 소득이 늘어나는데 소득을 늘린다고 성장하느냐, 앞뒤가 거꾸로 되는 거예요.”

▷기존 성장 공식은 한계가 있는 것 아닙니까.

“낙수효과가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내수를 키워야 하는데 대표적인 게 관광 교육 의료 콘텐츠 같은 서비스산업입니다. 우리는 국토의 60~70%가 산인데 산에 케이블카 하나 설치하기 힘들어요. 중국은 해발 2000~3000m에도 케이블카가 얼마나 많은지 압니까. 교육도, 의료도 산업인데 왜 그걸 인정 안 해요?”

▷‘의료산업’이란 말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장 반대하는 이유가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진다는 거죠.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당연지정제로 어떤 병원이든 환자를 다 받게 하면 되는 겁니다. 정말 개혁하려면 (관광 교육 의료 등 서비스 분야에서) 기득권이 뭉쳐서 도그마에 빠져 있는 부분에 칼을 대야 해요. 적폐청산은 바로 이런 기득권을 깨부수는 겁니다.”

▷정부가 내년 최저임금을 16.4% 올렸습니다.

“최저임금을 올릴 땐 근로자 생활 향상뿐 아니라 영세·소상공인들의 지급 능력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도 따져봐야 해요. 지금 지급하는 쪽에서 걱정이 태산이잖아요. 그래서 대통령도 ‘1년 해보고 인상 속도를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말이 어딨습니까. 대한민국 경제를 실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 사이 떨어져나가는 자영업자나 근로자는 어떻게 됩니까. 최저임금 산입 범위나 업종별, 지역별 차등화 문제도 짚어가며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식으로,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분 일부를 재정(세금)으로 보전해준다고 합니다.

“난센스예요, 난센스. 그게 지속가능합니까. 그리고 언제까지 할 겁니까. 그것도 1년 해보고 결정할 거예요? 정말 걱정입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성과연봉제 폐지는 어떻게 보십니까.

“비정규직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는데 ‘비정규직 제로(0)’라고 하는 건 정치적 구호예요.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정말 잘못했지만 그나마 건질 수 있는 게 성과연봉제입니다. (그걸 폐지하는 건) 역사를 완전히 후퇴시키는 거예요. 노조 주장대로 전부 호봉제로 하면 공공기관의 철밥통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합니다.

“OECD에서 보면 우리는 (양극화 정도가) 중간쯤 돼요. 양극화를 해소해야 하는 건 맞지만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측면도 있어요. 민주주의를 하는 한 투표가 불가피하고 표를 얻기 위해선 어느 정도 인기영합은 감내해야 할 민주주의의 한계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걸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 건지….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이 나와야 합니다.”

▷탈원전 정책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합니까. 대한민국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자기를 뽑아준 사람들만 보이는 것 아닌가요. 앞으로 전기요금이 인상되면 누가 감당할 건가요. 우리가 40년 이상 개발해온 원자력 산업, 일자리는 어떻게 합니까. 원전을 수출하겠다지만 자국 내에서 탈원전하는데 어느 나라가 믿겠어요. 에너지 98~99%를 수입해서 쓰는 나라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입지 조건이 나쁜데, 어떻게 하겠다고 짓고 있는 원전까지 덥석 중단시킵니까. 정말 겁 없는 사람들이에요.”

■ 윤증현 前 장관은

노무현 정부·MB 정부서 장관 지낸 정통 경제관료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 관료다. 2009~2011년 기재부 장관을 맡아 경제위기 극복을 이끌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로부터 2010년 4월 “한국은 위기를 통제하는 데 만점을 받았다. 교과서적 회복을 이루고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철저한 시장주의자로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다. 노무현 정부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청와대 386(당시 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참모들과 기업 지배구조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으면서 ‘임기를 못 채우고 쫓겨날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그의 임기(3년)를 지켜줬다. 필요할 땐 과감히 시장에 개입하기도 했다. 2005년 금감위원장 때 부동산 대출 규제인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처음 도입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실무라인인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이었다는 이유로 세무대학장 등 한직으로 밀렸지만 2004년 금감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해 조명받기도 했다. 2011년 자신의 성을 딴 윤경제연구소를 열었다.

△1946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행정학 석사 △1971년 행시 10회 △재정경제원 세제실장, 금융정책실장 △노무현 정부 금융감독위원장 △이명박 정부 기획재정부 장관 △현재 윤경제연구소장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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