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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없어도 된다"…문재인 대통령-기업인, 격식 허문 '열린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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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푼 26분간 '호프미팅'서 수제맥주 잔 채우고 건배
'노타이' 차림에 한 손에는 맥주 들고 웃음꽃 '화기애애'
손경식 CJ회장 "대통령 말씀 듣고 나니 '푸근하다' 느껴"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주요 기업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이뤄진 간담회는 예상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특히 본격적인 간담회에 앞서 청와대 상춘재 앞뜰에서 이뤄진 '호프미팅'에서는 무거운 경제현안 못지않게 가벼운 주제의 대화도 오가면서 기존의 대통령-기업인 간 간담회와는 차별화한 모습이 연출됐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손경식 CJ 회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예정된 시각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이들은 청와대가 권한대로 '노타이' 차림으로 참석했다.

약속 시각에 맞춰 문 대통령은 박용만 회장과 가장 먼저 반갑게 인사했고 나머지 기업인들과도 일일이 악수와 함께 인사했다.

문 대통령은 수제맥주를 제조하는 중소 업체인 세븐브로이맥주를 즉석에서 따라 마실 수 있게 만든 기계로 향해 자기가 마실 맥주를 따른 다음 금춘수 부회장과 구본준 부회장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문 대통령은 "편한 자리, 편한 만남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호프를 준비했다"면서 "수첩 같은 것 없어도 되니 편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했다.

"건강하십시오"라는 문 대통령의 건배사가 나오자 참석자들은 서로 잔을 부딪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문 대통령은 기업인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면서 친밀감을 표시했다.

특히 각 기업인에 따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듯한 '맞춤형' 질문으로 거리감을 좁혔다.

박용만 회장에게 "지난주에 손자를 보셨다고 들었다"며 "손자, 손녀가 아들딸하고 또 다르죠?"라고 말하자 장내에는 웃음이 터졌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 참석자 중 최고령자인 손경식 회장에게는 미국 방문에 동행한 데 이어 이날 간담회에도 참석한 데 감사의 뜻을 표하고 "경제계에서 맏형 역할을 잘 해주시리라 믿는다"고 덕담을 건넸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과 인사를 나눌 차례가 되자 참석자들의 관심이 일제히 집중됐다.

오뚜기는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으로 평가돼 중견기업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한 기업이다.

문 대통령이 함 회장을 보며 "젊은 사람들이 '오뚜기'를 '갓뚜기'로 부른다면서요"라고 말하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아예 함 회장을 대통령 옆에 서게 했다.

함 회장은 "굉장히 부담스럽다"면서도 문 대통령이 국민 성원이 힘이니 잘 발전하리라 기대한다"고 하자 "열심히 하겠다"고 화답했다.



간담회 안주는 '방랑식객'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임지호 셰프가 준비했다.

임 셰프는 직접 안주를 대접하며 일일이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해독작용을 하는 무를 이용한 카나페는 사회의 갈등과 폐단을 씻어내자는 의미를 담았고 소고기를 얇게 썰어 양념한 한입 요리에는 기를 보충하는 소고기로 끝까지 기운을 잃지 말자는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시금치와 치즈를 이용한 안주를 두고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재료가 하나의 음식이 되듯 화합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맥주는 '강서 마일드 에일'과 '달서 오렌지 에일'이 준비됐다.

특히 '강서 마일드 에일'은 과일향과 부드러운 맛이 특징으로 서로 부드럽게 화합해 모두가 행복을 품을 수 있길 바라는 의미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임 셰프는 안주를 담는 데 접시를 쓰지 않고 녹지원에 있는 나뭇가지와 나뭇잎, 꽃들을 넓게 펴서 그 위에 안주를 올려 냈다.

임 셰프가 안주를 만드는 이벤트 등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탁현민 선임행정관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프미팅이 예정됐던 20분을 훌쩍 넘겨 이어지자 참모들은 마무리 건배를 하고 안으로 들어갈 것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위하여"를 선창했고 기업인들은 "위하여"를 외친 뒤 맥주를 들고 상춘재 안으로 들어갔다.

호프미팅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상춘재 안에서의 본 간담회에서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박수현 대변인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별도의 발언 순서도 없었을 정도로 짜인 것 없이 기업인이 말하고 나면 대통령이 응답도 하고 물어보는 토론 형태로 아주 자유스러운 대화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다만 좌석은 사전에 배정돼서 문 대통령의 좌측에는 정의선 부회장, 우측에는 박용만 회장이 앉았고 맞은 편에는 손경식 회장이 앉았다.

청와대 내 '분위기 메이커'로 알려진 장하성 정책실장은 오뚜기가 간담회에 참석한 것을 소재로 삼아 "오늘 저녁은 오뚜기 라면입니까"라고 농담해 웃음을 자아냈다고 한다.

기업인들은 새 정부의 핵심 정책인 좋은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문 대통령은 이런 내용을 주로 경청하며 기업인들의 활동에 필요한 점이 있다면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청와대는 저녁 메뉴로 준비된 비빔밥에도 각별한 의미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미역과 조개, 낙지를 넣은 비빔밥은 각자를 존중하며 하나를 이뤄내는 공존의 미학과 미감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호프미팅을 포함해 두 시간 넘게 이어진 간담회는 끝까지 훈훈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손경식 회장은 "오늘 매우 만족스러웠다"며 "대통령 말씀을 듣고 '푸근하다'고 느끼고 간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문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혹시 말하지 못한 게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앞으로 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는 말로 다음을 기약한 채 마무리했다.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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