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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브리핑

EU, '러시아 제재' 강화하려는 미국에 경고…"유럽기업 타격 땐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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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푸틴 옥죄려다 EU와 충돌 조짐

독일~러시아 잇는 가스관 건설 등 유럽기업과 얽혀있는 사업 우려
"EU 이익 해친다면 WTO 제소"

'러 스캔들'로 궁지 몰린 트럼프…입장 바꿔 "제재법안 지지"

미국 하원이 지난 주말 대(對)러시아 추가 제재안을 표결에 부치기로 하자 유럽연합(EU)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유럽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제재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며 벼르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밀한 사이인데 미 의회는 러시아를 더 강하게 제재하기로 하고, 유럽 지도자들은 푸틴을 경계하고 있는데 정작 EU 차원에선 러시아 제재안에 반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EU, 미국의 일방 제재에 경고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회 상임위원장은 유럽의 에너지회사 등이 미국 의회의 새 러시아 제재안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확인하려고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25일 미국 하원이 대러시아 제재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전제로 26일 회의를 열기로 했다.

FT가 입수한 회의 자료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미국이 EU의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러시아를 제재하면 “EU가 수일 내 즉각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EU는 유럽 기업까지 제재 대상이 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지키는 범위에서 보복적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WTO에 제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이미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일로 미국과 EU 등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미국 의회는 종전 경제제재 내용 중 불확실한 부분을 개정하고 제재 대상 개인·기업을 정비하기로 했다. 또 제재 사유에 러시아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권을 지원하고, 지난해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한 것을 추가할 예정이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함부로 제재를 풀어주거나 의회의 뜻에 반해 유화적인 대러시아 정책을 펼치지 못하도록 막는 조항도 포함할 예정이다. 상원은 이미 지난달 97 대 2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새 제재안을 통과시켰다. 하원에서도 통과가 유력하다.

◆최대 관건은 독일 가스 파이프라인

문제는 미국이 러시아를 세게 때리면 유럽에서 ‘부수적 피해’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새 제재안이 겨냥하는 러시아의 돈줄 죄기 대상 중에는 유럽 기업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발틱해를 통해 러시아 서부와 독일 북부를 연결하는 가스 파이프라인 설치 프로젝트(노드스트림2)다. 네덜란드 쉘, 프랑스 엔지, 이탈리아 OMV 등이 투자한 사업이다.

미국의 제재가 시행되면 러시아 국영기업 가즈프롬이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독일 등의 2600만 가구에 대한 에너지 공급은 물론 관련 기업에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 독일 정부 관계자들이 올초부터 미국 의회의 제재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동분서주한 배경이다.

EU 회원국 모두가 독일의 이런 이해관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 등 EU 13개 회원국은 노드스트림 프로젝트가 수십 년간 유럽이 러시아에 의존하게 만들 것이라며 반대했다. EU 집행위가 ‘제2의 독일 정부’처럼 움직이는 것도 불만스러워하는 움직임이 있다.

EU 집행위는 이런 기류를 고려해 회의 자료에서 이것이 독일만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예컨대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동유럽 지역에도 공급되는데 미국의 추가 제재로 이 파이프라인의 유지보수가 어려워지는 점, 이집트만의 해양 가스전이나 카스피해 인근 파이프라인 개발이 까다로워지는 점 등을 함께 언급했다. 아울러 “(미국의 추가 제재로) EU 규정에 따라 합법적으로 러시아 기업과 철도, 금융, 해운, 광업 등을 하는 많은 유럽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비난 여론에 몸 사리는 백악관

러시아 스캔들 문제로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새 대변인은 이날 ABC방송에 출연해 “러시아 제재 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두 차례 만난 뒤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해야 할 시점”이라고 한 것과 대조적이다.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셀프 사면’ 등을 주장했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방향을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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