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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한모금 하시고~나마스떼" 비어요가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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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베를린에서 시작돼 뉴욕 등으로 뻗어나가는 요가가 있습니다. ‘비어요가’입니다. 요가와 맥주라니. 바로 매칭하기 어려운 조합이지요. 기괴한 요가 동작을 하면서 한 손에 맥주 병을 들고 있는 요가인들의 동영상과 사진. 외신이나 SNS에서 볼 때마다 “이거 실화냐”는 말이 절로 튀어 나왔습니다.

국내에서도 비어요가를 할 기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주말 한번 찾아가 봤습니다. 맥주를 마시기 위해 요가를 하는 건지, 요가를 하기 위해 맥주를 마시는 건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비어요가를 국내에 소개한 건 수제맥주 전문점 ‘생활맥주’ 입니다. 지난 주에는 ‘다크홉 비어요가’ 프로그램이 열었습니다. 이를 체험해보기 위해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 서초동의 실내 요가 스튜디오 그레이스힐스튜디오를 찾았습니다.

스튜디오에 들어서기 전부터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습니다. 알고보니 그게 바로 맥주 홉의 향이더군요. 요가 매트 앞에 앉았습니다. 눈 앞에는 수제맥주 두 캔과 큰 유리잔 하나, 그리고 투명한 컵 안에 애견 사료같이 생긴 진한 녹색의 알갱이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정체 모를 이 알갱이들이 맥주 원료인 홉. 코에 가까이 대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진한 맥주의 풍미가 느껴졌습니다. 추덕승 생활맥주 비어스페셜리스트는 “홉 자체가 불면증에 효과가 있고, 근육 이완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홉의 아로마가 몸의 모든 감각을 다 열어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홉의 향을 맡으며 요가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비어요가에 쓰일 수제 맥주는 두 가지였는데요. 하나는 홉 함량이 굉장히 높은 걸작IPA, 하나는 커피향이 진한 모카 스타우트 흑맥주였습니다. 홉의 향이 강한 걸작을 먼저 마시고, 이후에 모카 스타우트로 넘어가는 게 좋다는 강사의 설명에 따라 걸작IPA를 먼저 잔에 따랐습니다.

비어 요가의 첫 순서는 호흡. 숨을 깊게 마시고 내시는 중간 중간 맥주를 한모금씩 음미했습니다. 벌컥 벌컥 마시는 습관이 있던 사람에게는 인내와 절제, 고통의 시간. 하지만 조용하고 어두운 스튜디오에 요가복을 입고 앉아 마시는 맥주의 맛은 ‘내가 알던 그맛’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수제맥주가 수천 가지 향과 맛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도 마시는 방법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았었지요. 고요한 장소에서 오롯이 내 호흡과 맥주에 집중해 마셔보니 수제맥주 안에 들어있는 모든 재료의 향과 맛이 세세하게 느껴졌습니다.

호흡이 끝나자 다음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몸을 바로 세우고 한쪽 발을 무릎 옆에 붙인 뒤 손을 머리 위로 쭉 뻗는 ‘나무자세’를 할 때는 손 끝에 들려있는 맥주가 쏟아질까봐 정신을 번쩍 차려야 했고요. 작은 사고도 있었습니다. 다리를 한쪽으로 모은 채 상체를 뒤로 젖히고 맥주잔을 든 손으로 원을 크게 그리는 동작을 할 때는 한 여성분이 중심을 잃으며 맥주를 왈칵 쏟기도 했지요.

그래도 여기까진 좋았습니다. 아쉬탕가 요가에서도 가장강도가 세다는 전사자세를 하기 전까지는요. 전사자세는 나무자세와 플랭크 등을 결합한 고난도 자세입니다. 이 자세를 하면서 몸의 중심을 잡기도 어려운데 한 손에 맥주가 들려있으니 말입니다. 여기저기서 깊고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맥주를 마신 탓인지 몸에서 금방 열이 나면서 30~40분 지났을 때는 땀이 비오듯 쏟아졌고요. 손에 들려있는 맥주가 야속한 순간도 몇 번 있었습니다. “맥주는 내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도구”라고 반복하는 강사의 말이 나중엔 잘 들리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어요가를 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점 하나. 바로 내몸의 재발견 입니다. 평소 굳어있었던 어깨, 잘 벌어지지 않던 다리, 우직했던 허리는 어디가고, 내가 이렇게 유연했었나 싶을 정도의 자세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평소 한계치보다 몸이 훨씬 더 잘 이완되다는 건 확실합니다.

맥주 두 캔과 함께한 2시간의 비어요가. 마치 손연재 선수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몸을 마음껏 늘려보고 싶거나, 수제맥주를 정말 제대로 음미해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다음 비어요가는 하늘이 훤히 보이는 고층 건물 루프톱, 한옥의 중정 등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끝) / destinybr@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17(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