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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의 사회적 지위...치느님 '백일야화'에서 `올린 놈, 내린 놈, 눈치보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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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닭의 수난시대다. AI(조류 인플루엔자) 얘기가 아니다. 국민 간식을 넘어 주식이 된 ‘치느님’ 얘기다. BBQ가 8년 만에 치킨값을 올렸다가 16일 다시 원상복구했다. 처음 치킨값을 올리겠다고 한 지 100일만이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소비자들이 ‘치킨값 2만원 시대’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를 정리해 봤다.

○갈팡질팡 ‘혼돈의 100일’

치킨값 이슈는 지난 3월부터 시작됐다. 8년 만에 가격 인상을 결정한 BBQ, 이를 윽박지른 농림축산식품부, 인상방침을 철회하는듯 하다가 한달 만에 예정대로 10% 가격을 올린 BBQ, 여론을 요리조리 살피다가 뒤따라 가격 인상을 결정한 교촌치킨, 대한양계협회의 가격 인상 치킨업체에 대한 불매운동 선포, 1년간 치킨 한마리당 550원씩 광고비를 걷겠다는 BBQ, 공정거래위원회가 ‘갑질’을 손보겠다고 나서자 한시적 가격인하를 발표한 또봉이통닭과 호식이두마리치킨, bhc. 뒤늦게 아차 싶어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한 교촌치킨. 치킨업계 외톨이가 될까 긴급회의를 열어 올렸던 가격을 원래대로 되돌린 BBQ. 이 모든 게 지난 100일간 일어난 일이다.

○소비자는 다 알고 있다

요즘 물가를 생각해보자. 김밥 한줄에 4000원, 커피 한잔에 5000원, 수제맥주 한 잔도 1만원, 파스타 한 접시에 1만원을 넘는다. 유명 셰프가 한다는 레스토랑을 찾아 긴 줄을 서서 먹으면서 1인당 몇 만원씩도 기꺼이 지불하는 세상이다.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몇 년간 가격 인상 시점을 두고 서로 눈치만 봐왔다. 영세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가맹점주들이 하나같이 “인건비와 임대료가 올라 못살겠다”고 했다하니 말이다. 언제든 누구든 총대를 매야 했다. 그래서 8년 만에 900원~2000원 올리기로 했는데 이렇게 뭇매를 맞다니, BBQ 입장에선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똑똑하다. 또 냉정하다. 1975년 국내 첫 치킨프랜차이즈인 림스치킨이 등장한 지 40여년.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시대가 열린 것은 20년이 채 안된다. 그 사이 소비자들은 깨달았다. 우리가 치킨값으로 더 많은 돈을 내도 더 나은 맛과 서비스가 돌아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고 양계장의 닭들이 더 행복하고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며, 구슬땀 흘려 병아리를 돌보는 농민들이 부자가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아이돌 그룹과 유명 배우의 광고모델비, 가맹점 임대료를 내주려고 산지에서 500~1000원인 닭 한마리를 2만원에 먹는 소비는 한계가 있다. 실제 교촌치킨, bhc, BBQ, 네네치킨 굽네치킨 등 5대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가 연간 광고마케팅에 쓰는 돈은 각각 100억원이 넘는다. 반면 신제품 개발 등에 쓰는 돈은 연 1억원 안팎이다.

○올린 놈도, 내린 놈도 밉다

누군 올린다고 난리고, 누군 내린다고 난리고, 누군 올리겠다고 했다가 없던 일로 한다고 하니 소비자는 헷갈린다. 이 과정에서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민낯이 공개됐다.

우선 올렸거나 올리겠다고 했던 곳을 보자. ‘가격 인상파’는 BBQ와 교촌치킨. 작년 매출 기준으로 교촌은 1위, BBQ는 3위 업체다. 총대를 멘 BBQ는 가격 인상한 지 얼마 안돼 가맹점주들에게 ‘닭 한마리당 550원(부가세 포함)을 걷어 광고비로 쓰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지금도 연 130억원 정도를 쓰고 있는데 점주들로부터 각출을 하면 연 100억원 가량이 추가로 생긴다. 기존 광고비를 점주들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한 BBQ 측의 해명은 놀랍다.

BBQ측은 “가격 인상 여파로 당분간 매출이 떨어질 거고, 그걸 상쇄하기 위해 당분간 광고비를 연 130억원에서 23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고 했다. 이 해명에는 두 가지 의미가 깔려있다. 치킨 값을 올려 소비자들에게 얼마든지 광고비를 전가해도 된다는 논리, 어차피 가격 인상에 대한 저항은 얼마 뒤면 사라지고 소비자들은 다시 BBQ를 찾을 것이라는 자신감.

교촌치킨도 가격을 올린다고 했다가 철회하면서 그 동안 광고비를 얼마나 많이 써왔는지 시인하는 꼴이 됐다. 교촌치킨 측은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총 광고비용을 30% 줄이겠다”고 했다. 가격을 올릴 때는 가맹점주들의 인상 요구와 인건비, 임대료 상승을 명분으로 삼다가, 동결할 때는 과도한 광고비를 줄이겠다니.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가격 인하파’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또봉이통닭, 호식이두마리치킨, bhc를 보자. 이들이 가격을 인하한다는 명분은 거대하다. ‘서민 경제를 위해’ ‘가맹점주들을 위해’ ‘광고비를 줄이고 상생에 더 힘쓰기 위해’ 등등이다. 하지만 다들 시기를 2주~1개월로 정하고 있고, 일부 메뉴에 한정한 곳도 있다. 그저 여론을 등에 업고 '반짝 마케팅'을 노린 꼼수로밖엔 해석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치킨의 사회적 지위

이쯤되면 분명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대체 그깟 치킨이 뭐라고...’

틀렸다. 치킨은 우리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다. 1975년 림스치킨이 최초의 치킨 프랜차이즈로 닭을 튀겨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돌이켜보자. 처갓집 양념통닭, 멕시칸, 멕시카나, 페리카나, KFC, 파파이스, BBQ, 교촌치킨, 네네치킨...마니아가 아니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읊을 수 브랜드가 10여개는 훌쩍 넘는다. 뿐만 아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한국에 가면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치킨을 꼽고, 중국인 단체 수백명은 한국을 찾아 한 날 한 시에 치맥파티를 연다. 1인 1닭, 치느님, 닭터, 만병통치-킨, 얼리어닭터, 치-겔지수, 치-계부, 치므파탈, 치믈리에 등 신조어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 과정의 일등공신이 300개가 넘는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라는 것은 인정한다.

다만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지난 100일을 돌이켜보며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치킨 2만원 시대’에 대한 저항은 결코 그것이 서민 음식이라서가 아니다. 기억해보자. 명동 전기구이 통닭의 전성기 때도, 흰머리 할아버지가 KFC 치킨을 팔 때도, 우리는 특별한 날이나 기분 내고 싶은 날 치킨에 돈을 썼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가맹점 늘리고, 물류비 더 받고, 경쟁사 깎아내리고, 아이돌 섭외하고, 본사 매출 늘리기에 급급했던 날들은 화려했던 과거다. 마지막으로 <다 오르는데, 치킨값 인상 왜 유독 시끄러울까>라는 본지16일자 기사에 달렸던 한 네티즌의 지적을 인용한다.

‘1000원짜리 닭 한마리가 기름에 잠깐 들어갔다 나왔는데 2만원이 되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네요. 아이돌 모델들이 다 비슷한 치킨 광고 하는 것도 지겹고요. 광고비에 100억씩 쓰라고 2만원짜리 닭 사먹었나 자괴감이 듭니다.’ (끝) /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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