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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시장에 던진 금통위원의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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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경제부 기자) 9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별관 8층이 북적거렸습니다. 번호표를 목에 걸고 가방을 맨 대학생들로 가득했습니다. 출입 통제가 철저한 중앙은행에 대학생들이 줄지어 들어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은이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경제 강좌인 ‘금요 강좌’ 때문이었습니다. 한은은 1995년 5월에 처음으로 이 강좌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월 1회 ‘경제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열렸습니다. 2004년부터 월 2회 개최됐고, 2005년부터는 매주 금요일 실시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날 금요 강좌는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시작한 지 700회가 되는 날이었거든요. 조동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특별 강사로 나섰고요. 조 위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미스트 출신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거시경제 전문가로 꼽힙니다. 1984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재정경제부 장관자문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거쳤습니다. 균형 있는 성장을 중시하는 성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이른바 ‘7인의 현자’라고 불리는 금통위원이 직접 강사로 나와서인지 대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강당을 꽉 채운 대학생들은 조 위원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기대 섞인 눈으로 우레와 같은 큰 박수를 터뜨렸습니다.

열띤 호응 덕분인지 조 위원 역시 강의를 시작하기 전 “올해로 23년째, 700회째의 의미 있는 날 강의를 맡게 돼 기쁘다. 오는 12일이 한은의 창립 67주년이라 그 의미가 더 크다. 자발적으로 경제 강의를 들으러 온 대학생들이 다수라고 들었다. 눈높이에 맞춰서 최선을 다해 강의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희망과 기대 섞인 강의를 하고 싶지만 경제라는 게 마냥 그러긴 어렵다. 냉정한 계산과 차가운 이성이 필요한 부분이 바로 경제다. 한국 경제의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강의가 진행될수록 조 위원은 한국 경제에 대한 깊이 있는 진단을 하나 둘씩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했습니다. 고령화에 따라 노동력 투입 증가세가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섭니다. 경제가 성숙하면 자본 증가율은 자연스럽게 둔화되기 때문에 대내외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경제 구조와 생산성 제고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한국이 일본을 추격하듯 중국도 한국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어 혁신을 통한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게 얘기였습니다. 그러려면 인적 자원이 필요한 산업에 원활하게 배분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조 위원은 하지만 한국의 노동시장은 너무 경직돼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규직은 해당 산업의 수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비정규직은 고용 조정의 부담을 모두 떠 안고 있는 양극화와 이중 구조를 문제점으로 꼽았습니다. 또 정책금융 지원 확대로 조선·건설업 등에서 이른바 ‘좀비 기업’이 급증하고 있는 점도 우려했습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인기영합주의 정책 보다 생산성·효율성 향상을 위한 구조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내용이 강의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일각에선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일자리 창출 정책을 염두에 둔 비판이 아니냐는 시각을 나타냈습니다.

한국의 임금 제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조 위원은 “2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소비성향이 떨어진다. 이유는 은퇴한 이후 살아갈 기간이 계속 늘고 있어서다.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려면 임금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30년 이상 근속한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높다는 걸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이죠. 성과에 상관없이 오래 다니면 연봉이 오르는 한국의 호봉제를 생산성이나 직무에 직결돼 임금이 결정되는 선진국 임금 시스템과 비교해 비판한 겁니다.

이날 강의를 두고 “미래를 이끌 젊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라서 그런지 한국 경제에 대한 진솔하고 깊이 있는 금통위원의 시각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는 평가가 많았답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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