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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혜선 "고인 물 되지 않겠다. 베토벤과 리스트로 새롭게 에너지 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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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문화부 기자) 많은 대중들이 ‘베토벤’하면 흔히 웅장하고 무거운 음악을 떠올립니다. 물론 그의 작품엔 기본적으로 그만의 번뇌, 고집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포함해 유머와 풍자, 너그러움 등 그의 인간적인 모습까지 모두 담겨 있는 작품이 있는데요. 33개의 작은 소품집으로 이뤄진 ‘디아벨리 변주곡’입니다. 연주시간만 무려 50분에 달하죠. 이 곡의 장대한 구성 속에서 음은 자유자재로 변화하게 되는데요. 화려한 기교의 과장된 변주가 이뤄졌다가, 예상 밖의 경쾌하고 산뜻한 선율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이 곡을 시작한 것은 베토벤의 나이 53세. 그는 자신의 마지막 피아노 작품인 이 곡에 무궁무진한 음악세계를 모두 담아 보였습니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오는 10월 26일 4년만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주회 ‘헌신, Beyond playing’에서 이 곡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그의 나이는 올해 52세. 자신과 비슷한 나이였던 베토벤이 쓴 곡을 들고 무대에 오르는 그의 각오는 남다릅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교수 생활을 해오다가 베토벤이란 거장의 작품, 그중에서도 그의 인생을 집대성한 곡으로 나선 데는 이유가 있는데요. 백혜선은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교수 생활이 좋지만 한 가지에 안주하면서 고인 물이 되진 않으려고 한다”며 “베토벤의 모든 작곡기법이 담긴 디아벨리 변주곡을 연주하며 나이가 들면서 느낀 베토벤의 새로운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국내 피아니스트 1세대들과 신세대 피아니스트들을 잇는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을 한 대표적인 연주자로 꼽힙니다. 199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위를 수상, EMI 인터내셔널 클래식에서 한국 피아니스트로 최초로 음반 3개를 발매하면서 국내 클래식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죠. 1995년엔 29세의 젊은 나이로 최연소 서울대 교수로 임용돼 큰 화제가 됐는데요. 그런데 그는 10년 후인 2005년 돌연 서울대 교수 자리를 떠났습니다.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승승장구하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연주하면서 두려움이 컸어요. 이렇게 쉽게 올라가도 되는지, 꼭짓점을 치면 내려가는 길만 남은 건 아닌지 불안했어요. 제가 숙성되는 과정이 필요했던거죠.”

그리고 그는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다가, 2013년엔 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초의 동양인 교수가 됐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경험을 한 후 백혜선은 다른 시선과 마음가짐을 가진 피아니스트로 성숙했습니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2019년 데뷔 30주년을 앞두고 내년부터 2019년까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도 앞두고 있는데요. 그는 과거엔 전곡 연주에 회의적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곡을 하면 되지 굳이 전곡을 연주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한번 전곡을 정리한다면 베토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 같았죠. 음악인으로도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시간이 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10월 열리는 공연 1부에선 전곡 연주에 앞서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선보인 후, 2부에선 리스트의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회상’ 등을 연주합니다. “1부에선 베토벤의 모든 기법이 담긴 곡을 선보인다면, 2부에선 피아니즘의 정점을 이룬 곡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다 어려운 작품들이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걸 발산할 겁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져야 하는 게 예술가의 삶이 아닐까요.” (끝) /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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