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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한국에서 창업이 활성화되지 않는 세 가지 이유. 첫번째는 차고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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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생활경제부 기자)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창업하라고 합니다. 몇자리 안되는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애쓰지 말라면서. 실제 창업에 뛰어드는 젊은이도 많습니다. 바람직한 일일까요? 겉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얼마전 한 교수님과 만나 토론하며 정리한 얘기를 전할까 합니다. 교수님의 생각, 저의 의견을 섞어 정리했습니다. 한국에서 창업이 활성화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에 대하여.

=차고가 없는 나라

마이크로소프트가 전성기를 누리던 1998년. 빌게이츠는 한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이 가장 두렵습니까? 빌게이츠는 잠시 생각한 후 답했습니다. “누군가 어느 차고에서 무언가를 개발하고 있을 것 같다.”젊은이들이 차고에서 무언가를 개발해 경쟁자가 되는 것이 두렵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시간 구글의 창업자 래리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은 여자친구의 차고를 빌려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1998년 그곳에서 구글을 창업하고, 빌 게이츠의 불길한 예감대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됐습니다.

미국에는 차고 창업이 많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그랬습니다. 아마존, HP, 디즈니,할리데이비슨도 차고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미국 대학들은 아예 ‘차고창업’을 뜻하는 garage startup 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 입니다. 차고는 돈이 안들고, 나만의 스타일로 꾸밀수 있습니다. 창의적인 공간이 창의적 사고를 가져다준다는 면에서 스타트업이 태어나기 적당한 공간 아닐까 합니다.

한국에서 창업이 활성화되기 쉽지 않은 첫번째 이유. 차고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공간의 효과

농담하지 말라구요? 맞습니다. 반쯤 농담입니다. 그러나 반쯤은 진실입니다. 공간은 상상을 가능케 합니다. 시몬느라는 회사 얘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여성용 백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래서 명품 브랜드에 납품합니다. 주문한 회사의 상표를 부착하지만, 직접 개발한 제품을 브랜드에 제안하기도 하는 창조적 기업입니다. 핸드백 제조부문에서는 시장 점유율 세계 1위이고, 매출은 1조원이 넘습니다.

경기도 군포에서 의왕 가는 국도변. 도저히 그런 공간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회사에 들어서면 인공계단 같은 곳에 물이 흐르게 만들어 놨습니다. 들어갈때부터 뭔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정원도 잘 꾸며 놨습니다. 과실수와 관상수 등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때가 되면 과일을 따먹는다고. 사무실은 무슨 갤러리처럼 꾸몄습니다. 아 하나 더. 모든 사무실 옆에는 베란다가 있었습니다. 회사 대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비가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해가 뜨면 햇볕을 쐬며 자연과 접하는 공간입니다. ” 부러운 사무실이었습니다. 그들은 캠퍼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그들이 만드는 여성용 가방은 수천가지, 수만가지이지만 같은 디자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개의 브랜드에 납품을 해도 겹치는 게 없으니 명품 브랜드들은 불만이 없다고 합니다.

=industrial heritage

묘한 일도 있었습니다. 시몬느는 안양천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원에 내려가 안양천 건너편을 바라봤습니다. 뭔가 낯이 익었습니다. 공장들이 줄지어 있는 그런 지역입니다. ‘왜 낯이 익을까?’잠시 생각했습니다. 금방 생각났습니다. 그곳은 아주 오래전 제가 잠시 일했던 곳입니다. 피가 뜨겁던 젊은 시절, 공장의 삶을 체험하겠다고 갔던 그곳이었습니다. 선반 밀링으로 쇠를 깎던 일, 공장 형들과 술 퍼먹고 다음날 그 비싼 쇠에 구멍을 잘못 뚫어 사장한테 혼나던 생각 등이 스쳐갔습니다. 안양천에서 배구를 하다 어깨 인대가 찢어지는 바람에 짧은 공장생활을 마무리했지만.

명품가방을 만드는 회사는 그런 공장과 안양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기초가 됐던 기계를 깎고 만들던 곳과 미래산업의 냄새가 물씬 나는 디자인 기업은 서로를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대화는 궁금증으로 남겨두고 떠나려던 순간. 시몬느 대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명품이 나올때가 됐습니다. 한국도 그만한 산업적 유산(헤리티지)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천변 건너 공장들은 한국사회의 축적된 아이디어를 안양천 건너 디자인 기업으로 보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시몬느 캠퍼스를 나온 기억이 납니다.

=공무원이 꿈인 나라

다시 창업 얘기로 돌아갑니다. 엊그제 대기업 계열사 대표로 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자제분이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월급은 300만원이 안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봐주시는 아주머니(한국인)에게 180만원을 주고 나면 100만원도 안남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1등 배우자감인 나라가 한국입니다.

얼마전 9급 공무원 채용을 위한 필기 시험이 있었습니다. 22만8000명이 지원했습니다. 경쟁률은 46대1. 작년 9월에 있었던 경기도 7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는 1만399명이 지원했습니다. 경쟁률은 196대1이나 됐습니다. 환경미화원 모집에 유명 대학 졸업생들이 몰린다는 뉴스도 가끔 전파를 탑니다.

몇년전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본 화면도 기억납니다. 아이들 얼굴과 함께 그들이 써낸 희망직업이 화면을 타고 흘렀습니다. 공무원이 가장 많았습니다. 예전과는 달랐습니다. 1970년대 가난하고, 한반에 70명이 콩나물시루에 모여 공부하고, 그것도 모자라 오전반 오후반을 나눠 학교엘 다녔습니다. 서울 변두리에서. 그래도 친구들의 꿈은 컸습니다. 정치인이 되겠다, 의사가 되겠다, 과학자가 되겠다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 판사도 많았지요. 소방수가 되어 사람을 구하겠다는 애도 있었고, 수사반장을 보고 형사가 되겠다고 했던 친구들도 기업납니다. 돌아보면 저를 비롯한 과거 세대는 항상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다릅니다. 그 정서는 언어에서도 나타나지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하는 말 중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문장이 있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어.”

=안전이 최고의 가치가 된 나라

왜 공무원이 되려할까요?

사회가 안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가장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나섭니다.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공무원뿐 아니라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에 취업하는 신입사원들의 스펙을 보면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직업의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습니다. 대기업 그만두고 공기업 가는 친구들도 심심치 않게 볼수 있다고 합니다. 뛰어난 인재들이 가장 안전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창업은 모험중 모험입니다. 실패하면 인생 망하는 거라는 얘기지요. 성공가능성은 어떨까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국내에서 창업 1년된 20대 창업 기업은 전체의 0.9%였습니다. 20대 창업기업의 생존율은 1년 53.4%, 2년 36.0%, 3년 26.6%였습니다. 20대가 창업한 회사는 10개중 7개가 3년내 망한다는 얘깁니다.

=신용불량자 양산

창업을 했다 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신용불량자가 되겠지요. 창업자가 회사가 받은 대출에 대해 연대보증을 서야하기 때문입니다. 창업자는 대부분 회사의 대주주가 됩니다. 회사가 망하면 대주주의 책임은 어디까지 일까요. 원리로만 보면 주식을 포기하면 되겠지요. 하지만 한국사회는 아닙니다. 대부분 은행들이 대출에 대해 개인 연대보증을 요구합니다. 이 돈을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입니다. 연대보증 없앤다는 얘기가 나온지는 꽤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 공무원의 말이 기억납니다. “창조경제한다고 젊은이들 창업하라고 떠미는 것은 신용불량자 되라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합니다.”

또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창업실패에 이은 두번째 도전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됩니다. 실패를 자산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 컨설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첫번째 창업에 필요한 돈은 형으로부터, 두번째 필요한 돈은 아버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창업에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습니다. 창업조차 현재 사회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잠깐 과거로 돌아가 볼까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한국사회에서의 창업은 신분이동의 수단이었습니다. 중소기업부에서 썼던 기사의 제목이 생각납니다. <5평 문래동 철공소 근로자가 20만평 공단의 주인이 되다> 수많은 한국의 공장 근로자는 주인이 되어 신분이동에 성공했습니다. 이 이동은 한국사회를 역동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역동성이 사라지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덴마크에 창업이 많은 이유

덴마크는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학자들은 1990년대초 왜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을까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축구에서 그 원인을 찾은 사람도 있습니다. 덴마크는 원래 대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토의 상당부분을 독일에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한이 쌓였다고 합니다. 이 한을 풀어준 일이 발생합니다. 1990년대초 유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이 열렸습니다. 이 경기에서 덴마크는 독일과 붙었습니다.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덴마크가 승리했습니다. 수백년된 한을 풀어 행복감이 높아진 것 아닐까하는 추정이 나왔습니다. 물론 일시적 행복감이지 구조적 행복은 아니다라는 결론이 났습니다.

학자들은 평평하고, 안전하고, 모험을 할 수 있는 사회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덴마크에서 가장 많은 임금을 받는 사람과 가장 적게 받는 사람의 차이는 4배 정도라고 합니다. 한국 미국은 100배가 넘지요. 4배 더 받으려고 유치원부터 대학때까지 뼈빠지게 학원다니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덴마크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이 일을 가지고 창업을 합니다. 성공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사업에 실패하면 사회의 복지시스템이 이들을 구제해 줍니다. 다른 교육을 받고 또다른 도전을 할수 있지요. 사회안전망이 창업을 촉진하는 사례라고 할수 있습니다.

=돈에 대한 코드

차고가 없고, 안전하지 않아, 모험이 불가능한 사회. 창업을 가로막는 이 세가지외에 더 생각는게 있습니다. 돈에 대한 코드입니다.

미국인들의 돈에 대한 코드는 ‘ 성취’라고 합니다. 창업을 해서 돈을 벌면 성취의 기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창업한 회사를 대기업에 매각하면 큰 돈을 손에 쥐게 됩니다. 그 돈으로 무엇을할까요? 또 창업을 합니다. 성취에 중독된 것이라고 말하면 좀 과할까요. 제로투원의 저자 피터 티엘(피터 틸이라고도 함)과 함께 페이팔을 창업했던 친구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큰 돈을 손에 쥐고 또다시 창업을 하고 서로를 지원했습니다. 미국에서 몇년전 페이팔 마피아란 말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창업성공이 또다른 창업으로 이어진 경우는 찾기 쉽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의 돈에 대한 코드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문득 보험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돈은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창업을 해 돈을 벌면, 또다른 창업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아닐까. 오해는 말아주십시요. 창업으로 성공하고, 젊은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분들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그분들에 대한 존중과 별개로 한국사회 전반의 돈에 대한 코드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돈이 목적이 아니라 성취의 결과물로 인식되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중소기업을 담당할때 쓰고 싶었던 주관적 글을 다른 부서에 와서 한번 써봤습니다. (끝) /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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