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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애물단지 된 청사 얼굴인식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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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증권부 기자)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새로 도입된 얼굴인증 출입시스템을 놓고 뒷말이 무성합니다. 행정자치부가 ‘최첨단 출입통제시스템’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이 시스템은 공무원 시험 응시생이 인사혁신처에 침입, 성적을 조작한 일명 ‘공시생 사건’을 계기로 도입됐는데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시스템인지, 도입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이 공무원들 사이에서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공시생 사건을 계기로 청사 출입은 3중 관문을 거치도록 강화됐습니다. 우선 출입문에서 출입증을 찍고 들어가면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몸 검색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방검사와 몸 검색을 받은 후 마지막 관문이 얼굴인식입니다. 이 기계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위치에 서서 정해진 지점을 미동도 없이 쳐다보면서 출입증을 태그해야 합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거나, 목도리가 턱을 가렸거나, 안경을 벗었거나, 다른 지점을 쳐다봤거나, 사진이 오래됐거나, 태그를 너무 일찍 하는 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몇 주전까지도 오전에 청사 로비에 길게 줄을 서서 수십분을 낭비하는 일이 다반사였을 정도입니다. 청사 2층에 사진관까지 운영하며 거의 전 직원들이 사진을 다시 찍는(출입기자들도 대부분 사진을 다시 찍었습니다) 홍역를 치른 끝에 최근에는 인식률이 크게 올라가기는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굴인식이 신경쓰여 머리스타일을 바꾸기도 망설여질 만큼 얼굴인식기는 청사 공무원들의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얼굴인식기의 진짜 문제는 불편함이 아닙니다. 이런 불편함을 감내할 정도로 보안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깐깐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는 하지만 현재 외부사람들은 얼굴인식 없이 임시 출입증을 받아 청사에 출입할 수 있습니다. 마음먹고 속이려고 들면 얼굴과 신분이 달라도 출입이 가능한거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불필요한 보안인력 낭비도 지적됩니다. “인식기가 오류나는 경우가 많아 보안담당 인력이 그쪽에 많이 투입되다 보니 정작 필요할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불만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얼굴인식이라는 방식은 참 변수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일반적으로 대기업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지문인식 홍채인식 정맥인식 등 변수가 적은 방식을 활용합니다. 청사에는 이미 부분적으로 정맥인식과 지문인식이 도입돼 있기도 한데요. 이 시스템을 확장하면 변수도 적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었을텐데, 굳이 20억원 이상 돈을 써가며 얼굴인식 시스템을 전면 도입한 저의가 궁금하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행자부는 이에 대해 “비용절약을 위해 기존 출입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제2의 공시생 사건을 막겠다는 일념으로 야심차게 신규 시스템을 도입한 행자부의 의도 자체에 공감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충분한 사전조사를 거쳐 효과가 입증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인지, 수요자들의 불편이나 비용의 불필요한 낭비 등에 관한 고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정부의 보여주기 식, 행정편의적인 대책이 얼마나 불필요한 비용을 낭비하고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는지 얼굴인식 시스템이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네요. (끝) /

오늘의 신문 - 2024.04.17(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