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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 한교연…3·1절 ‘태극기 집회’ 교인 동원 논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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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연 문화부 기자) 보수적 성향의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이 탄핵기각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태극기 집회’ 행사에 교인 2만여명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뒤늦게 불거지며 비판 여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한기총과 한교연은 지난 1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 앞서 3·1절 구국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구국기도회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은혜와진리교회 교인 2만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오비이락이었던 걸까요. 문제는 기도회가 끝난 후에 생겼습니다. 한기총, 한교연 관계자들이 구국기도회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온 오후 1시 20분 경 ‘한국기독교성직자구국결사대’가 단상에 올라갔고, 2시부터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이하 탄기국)’의 탄핵 반대 집회가 이어졌습니다. 구국기도회에 참석한 교인들 대다수가 기도회가 끝난 뒤 탄기국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인 동원 논란’이 일어난 이유입니다.

교계 안팎에서는 구국 기도회가 탄핵 반대 집회 ‘사전 행사’였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교인들의 자유 의사로 집회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시간대에 행사를 개최하면서 조직적으로 교인들을 동원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입니다.

비난이 거세지자 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는 6일 “같은 장소를 사용하면서 빚어진 오해”라며 “한기총과 한교연은 나라사랑의 정신을 실천했던 신앙선배들의 순수한 신앙을 기리고 혼란한 국정의 안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회를 준비했고, 구국기도회 중 단 한 번도 ‘탄핵 기각’이나 ‘각하’와 같은 정치적 발언은 등장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저는 종교지도자와 교회가 특정 정당이나 노선의 입장에 서서 민감한 정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사회 갈등을 봉합하고 사랑의 정신으로 하나 되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장소가 겹친 데 대해서는 “기도회 준비 도중 ‘정치적 집회’와 무관한지를 수 차례 확인했지만 실무책임자는 무관하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며 “답변과 달리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명했습니다.

언론 보도와 타 교단의 비판에 대해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이 목사는 “그날 제 설교를 문제 삼은 것은 유감”이라며 “저의 설교 중 ‘SNS에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다’는 부분을 ‘탄기국 참가자들의 입맛에 맞는 발언’이라고 넘겨짚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교계 안에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 같습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총회)는 이 목사의 해명에 앞서 3일 성명을 내고 “국권수호와 민권운동의 상징인 태극기가 친일매국 군부독재의 뿌리에서 자라난 역사의 버섯을 옹호하는 일에 악용되고 있다”며 “한국교회 일부 인사들이 그 무리에 가담하고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같은 종교인으로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예언자 예레미야 시대에, 민족의 위기 앞에서 ‘거짓을 믿도록’ 예언을 팔아먹은 ‘하나냐’를 우리는 이 시대에 목도하고 있다”면서 “군부독재 시절부터 정교유착을 일삼아온 이들이 3·1운동 98주년 집회에 교인들을 동원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국정농단 세력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습니다.

98년 전 3.1운동을 주도했던 한국교회의 변질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이어졌습니다. 기장 교회와사회위원회는 “1919년 3.1운동을 주도하며 민족의 해방을 위해 기도했던 한국교회가 어쩌다 후안무치한 세력에 속해 파시즘의 최후 보루처럼 일하고 있단 말인가”라며 “하나님의 의를 이 땅 위에 이루어야 할 교회가 시대와 역사에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끝) /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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