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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퇴직 임원 '적(敵)'으로 만드는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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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금융부 기자) 은행권 분위기가 말 그대로 살벌합니다. 신한 국민 KEB하나 우리 농협 등 은행권에서 연일 대규모 희망퇴직에 영업점 통폐합 얘기가 들려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성장·저금리가 고착화된데다 핀테크(금융+기술)가 하루가 달리 발전하면서 은행들의 입지가 빠르게 좁아지고 있거든요. 택시기사 전용 대출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중무장한 인터넷전문은행까지 출격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달라지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소비자들에게 외면 당하기 십상이 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은행들은 갈수록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됐고요. 이런 분위기는 은행원들의 퇴직 현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습니다. 몇년 전만해도 은행 임원들의 퇴임식은 연례 행사였습니다. 대개 부행장급 임원들이 임기를 마치고 은행을 떠날 때 은행 차원에서 혹은 후배 등 동료들이 준비해주는 것이죠.

길게는 30년 가까이 한 조직을 위해 일해온 열정과 노력을 되새기고 기념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퇴직하는 임원의 가족까지 초청해 그 의미를 더 키우기도 했죠.

하지만 최근에는 은행권에서 이런 퇴임식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사 전날에야 자신의 퇴직 사실을 알게 되고, 퇴직 사실을 통보 받자마자 이용하던 전용 자동차와 사무실, 법인카드를 회수당합니다. 부행장 이상 임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하면 관례적으로 주어지던 고문이나 상담역 등도 상당 부분 사라졌다고 하네요.

긴 시간 몸 담아온 조직에 대한 마음과 신상을 챙길 여력도 없이 은행에서 나오게 된 임원들은 야속한 마음에 기존 예금을 다른 은행으로 옮기는 등 주거래 은행을 바꾸기도 한답니다. 임원뿐만이 아니라 지점장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한 시중은행에서 퇴직한 전직 지점장은 “문자메시지로 퇴직 사실을 알게 됐다”며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하루 아침에 수십년간 몸담았던 은행에서 떠밀려 나왔다는 생각에 주거래 은행을 경쟁 은행으로 바꿨다”고 전하더라고요.

이같은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한 금융권 원로는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충성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오랜 기간 은행에서 근무한 임직원들은 어찌 보면 최고의 충성 고객들이다. 성과주의, 생산성, 효율성 모두 중요한 가치지만 퇴직 순간에 그들에 대한 조금의 배려만 있어도 지속적으로 충성 고객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계산적이긴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 보면 퇴직 임원에 대한 마케팅을 실패한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최고의 마케팅이라는 얘기와 함께 말입니다. (끝)/kej@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1.09.23(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