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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속 암세포만 골라 10배 밝게 보여주는 신개념 조영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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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태 IT과학부 기자)한국 과학자들이 암이나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는 기존 자기공명영상(MRI)보다 병든 조직을 10배 선명하게 보여주는 강력한 신형 MRI 조영제를 개발했다. 이 조영제를 쓰면 암세포 부위는 물론 암이 전이될 인체조직도 보여 암 진단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천진우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의학연구단장(연세대 화학과 특훈교수)은 암세포 등 병든 세포에 외부 자기장을 주면 자성을 띠는 입자와 자성 나노입자를 달라붙게 했을 때 세포의 수소원자핵에서 나오는 MRI 신호가 증폭되는 자기공명튜너(MRET)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이를 이용해 병든 세포만 골라 보여주는 신종 조영제인 ‘나노 MRI 램프’를 개발했다고 6일 발표했다.

X선이나 CT(컴퓨터단층촬영)처럼 방사선을 이용하지 않는 MRI는 핵자기공명이라는 물리 현상을 이용한다. 강력한 자석을 인체에 갖다대고 몸속에 있는 작은 자침 역할을 하는 세포 내 물 분자 속의 수소원자핵(양성자)이 반응하는 정도를 분석해 영상을 얻는 원리다. 근육과 뼈에 물 함량이 다르듯 몸속 조직에서 암세포는 건강한 세포조직에 비해 물 함량이 달라진다. 사람을 MRI 장치에 눕히고 나서 몸속 부위에 고주파를 쏘면 해당 조직에 있던 수소원자핵이 이 고주파를 흡수했다가 다시 방출한다. 이때 신호를 받아 영상으로 얻는 방식이다. 하지만 기존 MRI 장치는 암세포 신호뿐 아니라 주변 조직 신호도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전문가들도 병든 조직을 헷갈릴 때가 있다.

이 신개념 조영제엔 병든 부위만 밝고 선명하게 보이고 건강한 조직은 어둡게 보이도록 하는 스위치가 달렸다. 연구진은 먼저 자기장을 줄 때만 자기적 성질을 띠는 상자성 물질과 자성을 띤 나노입자가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때는 MRI 신호를 내지 않지만 7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상 떨어지면 신호를 증폭시키는 성질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두 물질을 암세포 전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단백질(MMP-2)을 인식하는 물질에 붙여 주입하자 MRI 신호가 켜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암세포 전이 단백질이 인식물질을 끊으면서 자성 나노입자와 상자성 물질이 멀어져 MRI 신호가 켜진 결과다.

나노 MRI 램프를 사용하면 병든 조직을 주변 조직보다 최대 10배 밝게 보이는 고감도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천 단장은 “현재 사용하는 MRI 조영제는 몸 안에 주입되어 주변 조직과 병든 조직 간 명확한 구분이 어려웠다”며 “일반 조영제가 밝은 대낮에 램프를 켜는 것이라면 나노 MRI 램프는 밤에 램프를 하나 켜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나노 MRI 램프는 병든 세포를 인식하는 물질만 바꿔주면 다양한 질병 진단에 사용할 수 있다. 유방암과 위암, 폐암, 대장암 등 주요 암은 물론 동맥경화 등 심혈관질환, 뇌 알츠하이머 부위도 검출할 수 있다. 또 몸속에 있는 특정한 유전자와 단백질, 화학분자, 금속, 산도 (pH)도 MRI로 보여줄 수 있다.

연구진은 나노 MRI 램프가 앞으로 몸속 깊은 곳에 있는 질병을 탐지하는데 효과적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빛이 아닌 몸속까지 침투하는 자기장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천 단장은 “나노 MRI 램프는 원리가 간단하면서 높은 정확도와 민감도를 나타내 더욱 정밀하고 정확한 진단을 가능하게 한다”며 “분자 수준에서 관찰하고 진단하는 영상진단의 신개념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 6일자 인터넷판에 소개됐다.(끝)/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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