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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의 ‘외평채 트라우마’ 잠재운 유일호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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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심기 특파원) “예상보다 시장 분위기가 좋아 역대 최고 가격이 나올 것 같습니다. 당초 계획을 바꿔 외평채 발행을 결정했습니다.”

11일 저녁 9시(현지시간) 송인창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유일호 부총리와 뉴욕특파원 간담회 도중 외평채 발행을 전격 결정했다고 전했다. 유 부총리는 이날 맨해튼에서 월가 투자자를 상대로 한국경제 설명회(IR)를 마친 뒤였다.

당초 기재부는 IR을 위해 한국을 떠나면서 이번 출장기간중 외평채 발행은 없다는 방침을 밝혔다. IR을 겸한 투자자 면담은 외평채 발행을 위한 수요조사와 시장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며 최종 발행시점은 귀국후 결정하겠다는 게 기본 계획이었다.

기재부가 외평채 발행을 위한 로드쇼를 이처럼 ‘넌딜(Non-deal) 방식’으로 바꾼 것은 2008년 9월 리먼 사태가 뼈아픈 계기가 됐다. 당시 신제윤 기재부 1차관은 외평채 발행을 위한 로드쇼를 떠나면서 기자들에게 ”실패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9월 14일 터진 리먼파산은 전 세계 금융시장을 패닉으로 몰고 갔고, 외평채 발행금리가 폭등하자 신 차관은 눈물을 머금고 외평채 발행을 포기한 채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외평채 발행이 무산되면서 국제금융시장서 한국물에 대한 평판이 급속히 악화되자 정부는 이후 외평채 발행을 전제로 한 ‘딜 로드쇼’ 방식을 접었다.

유 부총리는 그러나 이번에는 한국물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수요가 예상외로 강하고, 발행시점을 미룰 경우 오히려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현장에서 발행을 과감히 결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주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취임식 이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고, 프랑스 대선 등 여러가지 변수를 감안할 때 상반기를 넘기더라도 지금보다 발행여건이 좋다는 보장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뉴욕시간 11일 밤, 한국시간 12일 오전 싱가포르 등 아시아 금융시장부터 입찰에 들어갔고, 런던금융시장을 거쳐 12일 오후 뉴욕서 최종 발행을 마감했다. 발행조건은 미국 국채(10년물) 금리 대비 55bp(1bp=0.01%p) 더해진 연 2.871%로 결정됐다. 달러화 표시 외평채로는 최저기록을 세웠다.

송 차관보는 “이번에 발행한 10억달러의 외평채는 3711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보유액을 감안할 때 금액 자체는 중요하지 않지만 한국 금융기관과 공기업이 외화 채권을 발행할 때 준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유일호 부총리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뉴욕 JFK공항을 떠나는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해 1월 13일 취임한 유 부총리는 태평양 상공에서 취임 1주년을 맞이 했다. 유 부총리는 전날 월가 투자자를 상대로 한 IR 프리젠테이션에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로 마무리했다. 성공적인 IR과 외평채 발행으로 한국은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돌파구를 찾는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면서 기재부의 ‘외평채 트라우마’도 날린 하루였다. (끝) /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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