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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용 의원이 가슴에 금배지 달지 못하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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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우 정치부 기자) 국민의당 새 원내대표에 29일 당선된 주승용 의원(사진). 그는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나 왼쪽 가슴에 늘 달고 다니는 ‘금배지’를 착용하지 않는다. 이날 경선 연설에서 주 원내대표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언급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제 선친은 1980년 11대 국회의원에 출마하셔서 2500표차로 낙선하시고, 그 이후 10년 만에 지병으로 별세하셨습니다. 평소 선친께서는 저에게 ‘이장선거라 해도 투표를 하면 절대 나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버님 돌아가시고 49재도 지내기 전에 도의원에 출마했습니다. 참 불효막심한 아들입니다.”

주 원내대표는 1995년 전남도의원 선거와 이듬해 여천군수 보궐선거, 이어 1998년 여수시장 선거에서 당시 소속 정당인 국민회의 공천에서 연거푸 탈락하자 곧바로 탈당, 무소속으로 당선돼 ‘세 번 탈당, 세 번 당선’이라는 진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계속해서 도의원, 군수, 시장 선거를 무소속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제 뒷바라지는 홀로 되신 어머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머니는 제가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2004년 4월15일 후 한달 만인 5월15일,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갑작스런 어머님 죽음에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주 원내대표는 입관식에서 어머니 옷고름에 전날 국회사무처에서 받은 금배지를 채우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님, 하늘나라에 가셔서 아버님 꼭 만나십시오. 만나서 아버님께 아들 국회의원 당선시키고 왔다고 꼭 전해주시고, 이 배지를 아버님께 채워주십시오”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때 울면서 저는 ‘앞으로 정말 깨끗한 정치,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정치를 하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 가슴에는 금배지가 없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유세 도중 용하다는 역술인을 찾아 아들의 당락을 물었는데, “당선은 되지만 그러고 나면 당신은 할 일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주 원내대표는 “제 개인 신상을 의원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은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의 마음, 처음 국민의당을 창당할 때의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되새기자는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주 원내대표는 야권의 전통적 근거지인 호남 출신이지만, 정치적 성장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던 ‘풀뿌리 출신’ 정치인으로 꼽힌다.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호남에서 연거푸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여수을에서 당선되며 처음 여의도 중앙정치에 진출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등으로 당 이름이 바뀌는 동안 사무총장, 최고위원,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하지만 주류로 떠오른 친노(친노무현) 세력과 번번이 갈등을 빚으면서 결국 올초 탈당, 국민의당에 합류해 4선 고지에 올랐다.

당내에서는 주 원내대표가 합리적이고 온건한 성향이라는 평가가 많다. 다른 3당 원내대표와 친분이 두터워 원내 협상을 부드럽게 풀어갈 수 있다고 그는 자신했다. 한솥밥을 먹었던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와는 ‘형, 동생’ 하는 사이이고, 주호영 개혁보수신당 원내대표와는 같은 ‘신안 주씨’ 집안에 성격도 비슷하며,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학 후배여서 잘 통하는 관계라고 했다.

이날 경선 승리의 기쁨을 안긴 했지만 당장 주 원내대표 앞에 쌓인 과제들은 만만치가 않다. 주 원내대표는 “국민의당이 까딱 잘못하면 제4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고 지지율이 계속 침체되고 있다”면서 “우리를 지지해준 호남에서조차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회와 국가가 정말 엄중한 시기”라며 “국회가 24시간 불을 밝히고 일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끝)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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