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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적 분장'에 대한 국립발레단의 석연찮은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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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결 문화스포츠부 기자) 한국경제신문은 지난달 31일 ‘'인종차별 분장' 그대로 무대 올린 국립발레단 '라바야데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1막과 2막에 등장하는 ‘아랍 아동’역 무용수들이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이 담긴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국립발레단 측은 기사가 나간 직후 3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라바야데르에 지금껏 이런 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었다"며 “기자가 잘 알아보지 않고 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팩트(fact)는 안무가인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정말 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었을까요. 국립발레단의 이번 공연은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버전을 기본 틀로 삼았습니다. 세계 무용계 인사와 관객들이 블랙페이스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온 버전입니다.

미국 헤럴드트리뷴의 평론가 캐리 사이드먼은 “여전히 블랙페이스 분장을 한 아동들 장면을 볼 때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고 기고했습니다. 무용 평론가 알라스터 맥컬리는 미국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백인이 흑인 역을 할 수는 있지만, 블랙페이스 분장은 너무나 터무니없어 그로테스크하지도 않을 지경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무용평론가 레이몬드 스털츠는 러시아 모스크바 타임스에 “아동들의 블랙페이스 분장은 다른 이들에게도 내가 느낀 만큼의 불편함을 줬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썼습니다. 모두 채 10년이 되지 않은 글입니다. 국립발레단에서 이 논란을 정말 몰랐을까요.

실상은 통화 네 번 만에 확 바뀐 국립발레단 측의 답변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단장이나 사무국 직원들이 이러한(인종차별적 분장) 논쟁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린 것"이라는 것입니다.

국립발레단 측은 “별 의도는 없었고, 인종차별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미국의 심리학자 멜라니 태넌바움은 “인종차별적 표현은 의도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며 “아무 문제도 없는 체 하는 것보다 지적을 받은 이유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지금껏 세계 각국에서 비판받은 표현법을 썼다면 더더욱 그렇겠죠.

물론 반대 시각도 있습니다. 이전 기사에 인용한 “발레 역사의 한 부분이니 굳이 고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은 영국인 평론가 주디스 메크렐의 의견입니다. 그는 “19세기 발레는 제국주의적인 시각에서 다른 문화를 표현했다”며 “그냥 발레 역사 중 아름답지 않은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가”라고 주장합니다.

발레는 현대 관객을 위해 공연하는 예술입니다. 다른 모든 예술이 그렇듯, 기본 틀을 유지하되 환경과 시대에 맞춰 바뀌죠. 라바야데르도 예외가 아닙니다. 무용수들의 배를 드러낸 의상, 삼단 피루엣(한발 끝으로 서서 빠르게 도는 동작) 춤, 짧아진 막 구성은 모두 19세기의 것이 아닙니다. 현대에 들어와 바뀌었죠. '원작 고수'를 방패 삼는 해명이 석연치 않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작품의 춤과 장면 의상에는 변화를 주면서,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인종적 평등에 반하는 분장 하나를 지켜야 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다른 발레단은 통상적인 무대분장을 쓰거나, 아랍 아동의 춤 대신 다른 장면을 넣어 진행하기도 합니다. 영국 왕립발레단, 미국 보스턴 발레단, 한국 유니버설발레단 등이 올린 공연이 그런 예입니다.

사실 볼쇼이 발레단도 원작에 수정을 가한 적이 있습니다. 2002년 미국 공연에서입니다.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흑인이 많은 주인 캘리포니아에서 열렸죠. 무용 평론가 루이스 시걸은 당시 미국 LA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그리고로비치는 원작의 가짜 이국적 분위기를 내는 키치(질낮은 예술)적 장면 일부를 완화하거나 고전 춤으로 바꿨다”며 “블랙페이스가 그 예”라고 썼습니다. “춤은 그대로지만, 다행히 블랙페이스 분장은 없었다”고 말했죠. 국립발레단에 분장을 그대로 요구했다는 그입니다. 국립발레단 측에 따르면 지금껏 별 논쟁이 없었다는 화장법을 이곳에서 없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국립발레단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서 정부 예산 지원을 받는 단체입니다. 한 문화계 인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국가를 대표한다는 발레단이 인종차별적인 표현 문제에 둔감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무대에 예술성과 함께 공공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을 바라는 것이 너무 큰 기대인 것일까요. (끝)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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