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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평가 정교화한 솔리드웨어 “머신러닝으로 빅데이터 가치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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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문화부 기자) 자산규모가 약 7000억원에 달하는 웰컴저축은행은 지난해 한 스타트업과 협업해 부도율을 약 3%포인트 낮출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부도율이 1%포인트라도 낮아지면 저축은행은 수십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 비법은 신용평가 시스템을 고도화한 것. 여신업무는 어떤 대출자가 상환능력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까지는 기존의 공개된 개인 금융정보 데이터를 이용해 대출자의 신용을 평가했다면 이 스타트업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활용해 정교한 평가 모델을 고안해냈다.

벤처기업 ‘솔리드웨어’ 얘기다. 최근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서비스) 기업 상당수가 지급결제·자산관리·P2P 대출 등 개별 금융서비스를 직접 구현하고 있다. 솔리드웨어는 특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다양한 금융서비스에 쓰이는 ‘데이터 분석’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달 20일 만난 엄수원 솔리드웨어 대표는 “웰컴저축은행에서 파일럿 프로젝트(pilot project·시범사업)를 마친 뒤 지금은 실제 시스템이 구축된 상태”라며 “이달 초 KB캐피탈과도 함께 계약을 맺고 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금리 대출을 활성화하려는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도 솔리드웨어와의 협업을 추진 중이다.

창업 시점은 2014년. 엄 대표는 “핀테크 붐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창업할 당시에는 핀테크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며 “금융업계에서 일하던 중, 다량의 금융데이터가 구식으로 관리되는 것을 본 것이 창업 계기가 됐다”고 했다. 서울과학고를 졸업한 엄 대표는 서울대에서 화학과 경영학을 복수전공했다. 프랑스 파리 공립경영대(HEC)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미국계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인 올리버와이만과 세계적 보험 그룹 악사(AXA)의 악사다이렉트코리아에서 일했다.

기계학습 전문가인 남편 올리비에 듀셴 공동대표의 기술로 모델링 방식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국적의 듀셴 공동대표는 기계학습과 컴퓨터 비전, 빅데이터 분야의 전문가다. 미국 NEC연구소를 거쳐 인텔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있던 그는 아내의 아이디어에 당장 동의했다. ‘보험 데이터에 기계학습을 적용해보자’는 목표 하에 의기투합한 두 사람이 설립한 회사가 솔리드웨어다.

금융업계는 그간 개인 금융정보의 몇 가지 항목을 선형함수로 모델링해 상관관계를 조사해왔다. 저축은행의 경우 대출 신청자의 거주지·나이·직업·회사명·근속연수·대출건수 등을 활용하는 식이다. 신평사들이 보유한 금융정보 항목은 1000여개에 달한다. 이중 실제 사용되는 항목은 20개 내외 정도다. 선형함수는 직관적이어서 눈으로 상관관계를 파악하기는 쉽지만 단순성 때문에 모델의 예측력이 떨어졌다. 엄 대표가 문제점을 파악한 지점이다.

솔리드웨어는 딥러닝과 리그레션 포캐스트(회귀예측), 부스팅(예측모형의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데이터분석 기법), SVM(support vector machine) 등 기계학습 기법을 활용해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비선형 함수 예측모델을 제시한다. 엄 대표는 “기존 신용평가 방식은 문제가 심각한 대출 신청자는 걸러낼 수 있지만 우량 신청자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며 “은행·보험사·카드사 등 모든 금융기관에서 예측의 정교함을 높여주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결과가 다소 직관적이지 않을 수는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특정 수를 뒀을 때 인간 해설자들이 제대로 평가를 내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엄 대표는 “기계학습 기술은 직관적이고 이론적으로 아름다워서 뜬 것이 아니다”며 “결과가 너무 좋아서 주목받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외에서 가장 유사한 회사는 더글러스 메릴 전 구글 최고정보책임자(CIO)가 설립한 ‘제스트파이낸스(ZestFinance)’다. 팔란티어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는 분야는 다르지만 정보 예측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엄 대표는 말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만든 벤처캐피털 회사 ‘인큐텔’이 투자한 이 회사는 테러 예측으로 이름난 회사다.

현재 직원은 14명에 달한다. 듀셴 공동대표 외에도 기계학습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기계학습 분야 선임연구원인 예브게니 크류코프 박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통계물리로 박사학위를 따고 글로벌 칩셋 제조사 AMD와 삼성전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또 다른 선임연구원 유리 초이 박사는 러시아 톰스크 기술대에서 컴퓨터과학 박사과정을 밟은 AI 전문가로 인공신경망을 활용한 기계학습 모델에 일가견이 있다.

당분간 솔리드웨어가 집중할 분야는 금융이다. 하지만 데이터 분석 기술 자체는 범용성을 지니고 있어 향후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계획을 갖고 있다. 엄 대표는 “고객의 리스크를 지고 있는 모든 회사가 솔리드웨어의 고객”이라며 “금융업 외에 제조·의료 분야서도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마다 인공지능(AI)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시대가 도래했을 때 소상공인부터 중소기업·대기업이 모두 쓸 수 있는 AI 솔루션을 개발·배포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AI기술진과 이를 구현하는 개발진 사이의 균형잡힌 조직이 중요하다는 것이 두 공동대표의 판단이다. 특히 최근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는 엄 대표는 “AI 분야에서 페이스북은 연구의 자유도를 폭넓게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알파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구글이 역량을 한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향후 솔리드웨어도 연구·개발(R&D)과 구현 사이의 밸런스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연구와 엔지니어링을 적절히 배합한, 정교한 AI 개발조직이 되는 것이 꿈이에요. 누구나 적절한 가격에 쉽게 접할 수 있는 AI 솔루션을 선보이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올해는 대형 금융사와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것과 더불어 비금융 영역의 데이터 분석 시도도 이어질 계획이에요. 특히 하반기에 저희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의 노하우가 집약된 솔루션이 나올 예정입니다. 기대해주세요.” (끝)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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