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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3위 코데즈컴바인, 국내 증시의 부끄러운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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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지 증권부 기자) “정말 모르겠습니다. 일주일 간 알만한 사람에게 모두 물어봤는데 주가가 오를만한 특이사항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증권업계 ‘마당발’인 한 리서치센터 팀장은 ‘코데즈컴바인 시총 3위’ 현상의 분석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의류업체인 코데즈컴바인은 이달 들어 4배 가까이 주가가 치솟아 지난 11일 코스닥 시총 3위에 올라섰습니다. 4년 연속 적자기업에다 최근 기존 주식 수의 99.5%를 줄이는 감자를 단행했는데도 말이죠.

얼마 전까지 시총 500억원 수준이었던 회사가 갑자기 3조원대가 됐는데 이유를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호재가 혹시 숨겨있는건 아닐까 고민도 해봤습니다. 실적 개선? 인수합병(M&A)? 상상하지 못했던 글로벌 큰 손이라도 등장할 가능성도 염두해뒀습니다. 실제로 외국인 계좌에서 이 주식을 계속 사들이는 게 잡히면서 ‘뭔가 있는게 아닌가’하는 기대가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설사 실적 개선이 이뤄지고 M&A가 추진될지라도 이 회사가 과연 3조원대 가치가 있는 회사일까요. 토종 의류브랜드 ‘1세대’인 이 회사는 SPA브랜드의 경쟁 심화로 매출이 170억원대 영업손실이 200억원대로 내려앉은 회사입니다. 바이오·제약회사처럼 대규모 기술수출이 가능한 회사가 아니고 온라인 게임개발회사처럼 갑자기 실적이 좋아지는 회사도 아닙니다. 중국 한류 열풍을 선도하는 CJ E&M(2조9204억원·코스닥 시총 5위)이나 성형 미용 시장의 높은 성장세를 등에 업은 메디톡스(2조6642억원·시총 6위) 보다 더 높은 가격을 주고 이 회사를 살만한 투자자가 과연 있을까요.



심지어 이 회사는 지난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 같은해 12월 전체 주식의 99% 이상을 줄이는 대규모 감자를 했습니다. 이후 채권단들이 출자전환한 주가는 액면가 500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선 주가가 급락하기 마련입니다. 지난 11일 코데즈컴바인은 8만9500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세 달 전까지 500원의 가치를 하던 주식을 아무 이유없이 주당 8만9000원까지 오른 겁니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사고 있습니다. 기업가치는 어찌됐든 오르니까 사는 겁니다. 이 회사 주식은 출자전환이 이뤄지면서 99.5% 이상이 보호예수 물량으로 묶여있습니다. 전체 3700만주 가운데 25만주만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시총은 3조원 대이지만 실제 유통주는 25만주, 220억원 규모입니다. 외국인 계좌에서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중소형주를 사들이면서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이 몰려가 매수세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기관은 매수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몰라서 산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알면서도 단시간에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사는 겁니다. 그 사람들을 탓하기도 어렵습니다. 얼마나 상승세가 지속될지는 알 수 없고, 실제로 상상 이상의 투자가치가 숨겨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투자가치를 알 수 없는 주식에 투자를 결정할수록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온라인 주식게시판엔 ‘한심한 코리아 주식시장. 그냥 100% 도박장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공매도쳐서 주가를 내리고 실적이 몇 년째 적자라도 어떻게든 올려버린다. 정말 쓰레기라는 증거지’라는 원색적인 불만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이 약 200조원 수준인데 이달 들어 코데즈컴바인의 시총 증가규모가 1%를 웃도는 2조5000억원입니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가 5%가 상승했는데 1% 넘게 코데즈컴바인 이상 급등 효과를 얻은 셈입니다.

일부에선 이러다 코데즈컴바인이 코스닥 시총 1위에 오르는건 아니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 시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시장이 작아서인지, 욕망이 커서인지 모르겠지만 국내 주식시장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끝)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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