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취재 뒷 얘기

'이재명 상품권' 문제점 해부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노경목 지식사회부 기자) 지난달 22일 한국경제신문의 단독 보도 이후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 배당 정책이 계속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장이 워낙 개성이 강한 사람이고 종합편성채널 등에서 선정적인 보도가 이어지면서 정책 자체보다는 부수적인 이슈가 부각되는 면이 있습니다. 야당 지지자들은 해당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이 시장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례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청년 배당 정책은 정책 자체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고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곱씹어봐야할 부분이 많습니다. 문제점을 차근차근 정리해봤습니다.

1. 저소득층에 불리한 보편적 복지정책이라는 점입니다.

한경은 청년배당정책이 이슈화된 다음날 다음과 같은 기사를 통해 정작 도움이 필요한 기초생활자들이 해당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줬습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12274081&intype=1

박상용 기자가 추가 취재한 결과 청년 배당 대상이 되는 이들 중 기초생활수급자인 113명(성남시측의 자료 제공 오류로 기사에는 다른 수치가 올라갔다) 중 45명이 최종적으로 상품권 수급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전체 대상의 39.8%입니다.

지난주까지 전체 청년 배당 대상자 1만1300명 중 9900여명이 상품권을 수령해 지급률이 87.6%로 9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상품권 지급 조건이 소득 맨 아랫단의 청년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와중에 성남시는 공공근로사업과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 등 저소득층 자활 사업을 축소했습니다. 만 24세면 직장을 다니고 있든 시가 6억원 이상의 분당 아파트에 거주하든 돈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작 저소득층의 복지는 줄인 겁니다.

복지는 어려운 상황에 있거나 자활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대상으로 집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재정이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눈치를 본다”는 이유로 돈 있는 집 아이들도 공짜 밥을 먹이자고 하던 분들이 소득 최하위가 접근하기 힘든 시스템을 보편적 복지제도랍시고 만들어 놓고 옹호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이 있습니다. 반박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1. “애초에 상품권을 소득으로 잡아 기초수급자에서 제외되게 만드는 법 규정이 문제다”는 주장에 대해

헌법이 일반 법에 우선하고 법이 조례에 우선하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원칙입니다. 지자체가 새로운 정책을 만든다면 거기서 법이나 정부 규정은 상수로 놓고 설계해야 합니다. 상품권을 소득에 잡는 것은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성남시의 청년배당정책 시행을 위해 전국에 적용되는 법 규정을 바꾸자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1-2. “정책을 시행하다보면 부작용도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해

문제는 성남시가 해당 사실을 시행 전에 알았다는 점입니다. 위에 링크한 기사에 나와있듯 성남시는 친절하게 “청년배당의 수혜를 입으면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지원이 줄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저는 청년배당정책의 대상이 되는 기초수급자들에게 상품권 지급 이외의 다른 혜택을 주는 방법으로 충분히 제도로 끌어들일 기회가 있었다고 봅니다. 쌀이나 식자재 등 식료품을 추가로 10만원어치 이상 지급하는 등 실물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정자동 주상복합에 사는 청년 등 소득이 높은 이들에게 돌아갈 12만5000원어치 상품권을 12만4000원으로만 낮춰도 재원은 조달이 가능했겠죠. 때문에 위에서 지적한 문제는 시행상의 시행착오가 아니라 알면서도 안한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재명 시장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2. 지역 상품권을 뿌리는 것은 복지정책으로 알맞지 않다는 점입니다.

처음 청년배당정책이 이슈화됐던 것은 그 수단인 상품권이 중고품 매매 사이트를 중심으로 할인된 가격에 거래가 됐기 때문입니다. 상품권 할인은 결국 성남시가 목표했던 대상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이득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2만5000원의 상품권을 10만원에 매입한 사람이 있다면 처음 상품권을 지급한 청년은 10만원, 이 상품권을 사들인 사람은 2만5000원의 이득을 얻습니다. 상품권을 받은 상인에게 성남시가 12만5000원을 지급하는 점을 감안하면 성남시의 재정 2만5000원이 복지대상으로 삼았던 청년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지급되는 겁니다.

시장에서는 100만원까지 상품권을 매입한 이도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 20만원 이상의 세금이 엉뚱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셈입니다. 깡을 해 현금으로 쓰는 돈과 상품권 액면가의 차액은 고스란히 새어나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특히 반론이 많습니다. 하나 하나 반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1. “상품권 깡은 일부의 특수한 행동일 뿐이다.”

성남사랑상품권은 깡이 시스템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재명과 그의 지지자들은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비하했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당연한 경제적 행동입니다. 사용범위가 성남이라는 지역에 한정된데다 그마저도 재래시장을 중심으로만 유통이 가능해서입니다. 취업을 지원한다지만 학원과 문구점 등에서는 이용할 수 없습니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배포해 온 성남사랑상품권은 청년배당 이전에도 5%정도 할인된 가격에 거래됐습니다. 이번에 많은 물량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할인률이 20% 이상까지 올랐을 뿐입니다. 성남시가 나서지 않는다면 정확히 깡으로 현금화된 상품권이 얼마나 되는지는 통계를 내기 힘들 겁니다. 다만 내수진작을 위해 2009년 2조엔어치의 상품권을 나눠준 일본에서는 이중 68%가 깡으로 나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2-2. “백화점 상품권, 구두 상품권도 깡이 있는데 왜 성남사랑 상품권만 문제 삼나.”

민간기업은 시장을 통해 상품권 발행 여부와 유통 물량을 조정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상품권에 대한 할인이 과도하게 이뤄지면 상품권의 판매가 어려워져 상품권 발행 자체가 중단됩니다. 아울러 할인된 상품권은 시장에서 생산품의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마케팅에도 중장기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 신문사들이 마케팅 차원에서 경쟁적으로 발행했던 신문 정기구독 상품권이 사라진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반면 정부나 지자체의 결정에 의해 발행되는 상품권은 이같은 ‘시장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정치가나 관료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권은 상품권 유통으로 이득을 얻는 일부의 환호 속에 계속 공공 재정에 손실을 안기며 계속 나올 것입니다.

2-3. “어쨌든 지역에서 쓰일테니 상인들에게 도움이 될 거 아닌가.”

청년 배당이라는 정책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정책의 목표는 성남 내수 부양이 아닌 청년 돕기입니다. 정책의 주된 목표가 좌절된 상황에서 부수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정책이 괜찮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해당 반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따져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사례에서는 상품권 배포가 소비 증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소 다로 내각은 모든 가구에 2조엔어치의 상품권을 나눠줬습니다. 4인 가족 기준 6만엔어치를 받은 것이죠. ‘고향 쿠폰’이라는 이름으로 용처는 백화점과 마트에 제한됐습니다.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현금을 나눠주면 저축할 가능성이 높아 상품권을 나눠 준 것이죠.

하지만 국민들은 이를 할인해 현금화하는 것을 선호했고 68%가 시장에 나왔습니다. 기대했던 내수 부양으로도 이어지지 않고 실패한 정책으로 끝났습니다. 상품권 할인업을 하던 사채업자와 야쿠자들의 배만 불렸다는 조롱이 나왔고 재정 부담은 국민에게 되돌아갔습니다.

3. 마지막으로 부자 지자체와 가난한 지자체 사이의 복지 격차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세수가 많고 재정 자립도가 높은 지자체일수록 성남의 청년 배당과 같은 복지정책을 펼칠 여유가 많겠지요. 사실 서울 강남구 등도 일찍부터 다자녀 가정에 대해 서울의 다른 구보다 나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지자체일수록 당연히 기업도 많고 잘 사는 사람도 많이 삽니다. 성남도 분당과 판교의 탄탄한 중산층과 기업이 있었기에 이같은 정책을 내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는 의미가 큰 복지의 기본 개념과 충돌합니다. 빈곤층이 더 많이 사는 서울 중랑구나 도봉구, 경기 연천 포천 등에 사는 사람이 가난한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부자 동네에서 누리는 복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반면 거래가 10억원이 훌쩍 넘어가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부자 지자체의 복지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죠.

저는 이런 이유로 지자체의 복지 정책 재량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자체에서 넉넉한 복지를 할 재원이 있다면 정부에서 회수해 재정 사정이 열악한 지자체에 더 나눠줘야 한다고 봅니다.

이재명 시장은 자신의 청년배당 정책에 대한 언론의 공격에 맞서 ‘손가락혁명 동지’들의 궐기를 호소했습니다. 지난해 모집했다는 이 ‘동지’들은 네이버에서 댓글 3개를 달고, 좋아요와 싫어요도 각각 3개씩 누르는 ‘3 3 3운동’을 실천하고 있다고 합니다. 온라인 여론을 등에 업고 복잡한 논쟁과 절차를 우회하고 싶어하는 인상입니다.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부작용 없는 방법은 한번에 무언가를 뒤엎고 이뤄내는 혁명이 아니라 논쟁과 타협을 통해 한걸음씩 전진하는 개량이라는 점을 이재명 시장이 되새겼으면 합니다. (끝)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 관련 반론보도문>

본지는 2016년 2월 4일자 '이재명 상품권 문제점 해부' 제하의 기사에서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이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에 불리한 정책이라는 취지의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성남시는, '청년배당 정책'의 '성남사랑상품권'이 소득으로 집계되는 것은,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노인기초연금' 등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대부분의 복지제도가 관련 지침에 따라 공적 이전소득을 소득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혀왔습니다.

또한, 올해 성남시의 공공근로사업과 지역공동체일자리사업 예산이 축소된 것은 고령자의 저조한 참여도에 따른 정부 지침으로 인한 것일 뿐, '서민생활 생계안정 대책 일자리사업예산' 등 여타 복지사업 예산이 증액되어 전체적으로 저소득층 자활 사업 예산은 확대됐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성남사랑상품권'은 전통시장 뿐만 아니라 학원, 서점, 문구점, 체육·문화시설 등 사용처가 다양하고, ‘청년배당 정책’의 목표는 단순히 ‘청년 돕기’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청년의 복지향상 및 취업역량 강화와 성남시 지역경제의 활성화'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autonomy@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3.2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