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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커밍아웃'한 서울대 총학생회장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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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주 지식사회부 기자) 서울대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선 여학생이 스스로 ‘레즈비언’임을 공개해 화제입니다. 제58대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한 김보미씨(23·소비자아동학부)가 5일 저녁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갑자기 “저는 레즈비언입니다”라고 ‘커밍아웃(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하는 일)’을 한 것인데요.

학생운동조직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비(非)운동권’으로 평가받는 김씨는 올해 서울대 총학생회에서 부총학생회장과 ‘서울대 교수 성희롱 및 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행동’ 학부생 대표 등을 맡아 활동해왔습니다.

김씨는 이날 간담회 도중 “사람들이 가진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긍정하고 사랑하며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김씨의 발표문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대학 생활 4년 동안, 인간 김보미는 기정사실처럼 이성애자가 되었습니다. (중략)...‘당연히 이성애자일 것이다’는 전제에서 파생된 이러한 질문에 저는 어떠한 답변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놓을 수 있는 거짓 아닌 답변이 정말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대학 생활은, 글쎄요, 한 반 정도 진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의 성적지향은 사적 영역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굳이 선거 출마를 결심하며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학교생활에서 성적지향은 필연적으로 언급될 수밖에 없으며 언급될 때마다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저는 완전히 '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저는 제 얼굴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중략)...개인적 계기로 커밍아웃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저는 함께 자신의 삶과 관점이 바뀌는 경험을 하였고, 이는 정말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총학생회장으로서 학교에 불러오고 싶은 변화 또한 이 경험과 맞닿아있습니다. 얼마 전 커밍아웃한 애플의 CEO 팀 쿡의 말처럼, 성적지향을 사적 영역의 문제로 두기를 포기함으로써 우리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저는 포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지향은 사람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저는 레즈비언이지만, 여전히 회라면 정신을 못 차리고, 노래방에 가면 마이크를 놓지 않으며, 집에 들어가는 길에 사람들과 맥주 한 잔 하기를 좋아합니다. (중략)...디테일 선본의 정후보 김보미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은 김보미가 가진 요소 중 단지 하나의 요소일 뿐입니다.

(중략)...오늘 저는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합니다. 그러나 커밍아웃 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전히 서울대학교 학생사회는 시급한 문제와 산재한 안건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저는 단지 우리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불문하고 힘을 모아 일해 나가는 동료라는 점, 이 사실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저를 시작으로 모든 서울대학교 학우들이 본인이 속한 공간과 공동체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얼굴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김씨의 커밍아웃에 대해 서울대 학생들은 대체로 뜨거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성소수자 운동과 한국 인권운동 역사에 남을 명연설”이라는 극찬도 들었습니다.

김씨의 발표문 전문을 실은 서울대 학생언론 <서울대저널> 홈페이지가 6일 오후까지 트래픽 초과로 접속이 안 되는 등 외부의 관심도 컸습니다. 과연 김씨가 동성애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하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 총학생회장’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네요. (끝)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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