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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발해·일본 사신단의 '자리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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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역사읽기) “(일본 사신단이)초리에서 출발해 장안의 장락역(長樂驛)에 도착한 후에야 오품 관리들이 그들을 맞이해 황제의 칙명을 전하는 등 당나라 조정에선 일본 사신단에게 합당한 답례를 하지 않았다. 반면 신라에선 태렴(泰廉)왕자가 사신으로 장안에 도착하니 관리들은 황명을 받들어 사신단을 맞이했고, 사신단이 마차에서 내려 답례를 했다. 그러나 발해의 사신은 모두 말에서 내린 후에 예의로 답했다.” (『속일본기(續日本紀)』 권35 광인천황기(光仁天皇紀) 보구(寶龜)10년(779년) 하사월 신묘조) 위의 글은 당나라 장안에 도착한 신라와 발해, 일본 삼국의 사신에 대한 당나라측 대...

오늘의 신문 - 2024.03.2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