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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이명박 "자네 어디 신문사야?"…취재원과 기자의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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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훈 지식사회부 기자) “수사 답보상태라는 지적이 있는데 언제쯤 성과가 난다고 보세요?”(취재기자 A)

“법무부 장관이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취재기자 B)

“야당 의원들도 다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보고 계신가요?”(취재기자 C)

“아, 행사에 왔는데 왜들 이래요?”(김진태 검찰총장)

지난 24일 법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김 총장이 취재기자와 주고 받은 문답입니다. 어떤 출입처든 기관장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보니 이렇게 상황이나 맥락과 관계 없는 문답이 오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기념식이든 시상식이든 관계 없이 기관장이 모습을 보이면 기자들은 가장 뜨거운 감자를 질문으로 꺼내 기관장에게 들이밉니다. 90% 이상은 “다음에 합시다”와 같은 식으로 대답을 피한다는 걸 기자도 알지만 그래도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게 기자의 일입니다. 질문이 맥락 없는만큼 대답도 맥락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우연히 기자를 만나 현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어떤 질문인지와 관계 없이 “날씨 좋죠?” 또는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대답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자가 아주 예상 밖으로 ‘대박’을 건지는 날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취재원이 우연히 만난(혹은 전화 연결한) 기자에게 작심하고 한마디 던져 뉴스를 만들어주는 거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던 2003년 1월 한 방송사 기자가 노 전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 기자는 새 정부 국무총리 인선에 대해 취재하다가 별다른 수확이 없자 직접 노 전 대통령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연히 비서나 다른 가족이 받겠거니 했는데 우연히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받았고 바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고 하네요. 이 방송사는 저녁 뉴스에 ‘개혁형 총리 고려’라는 헤드라인을 걸었습니다. 한발 늦은 다른 기자들이 노 전 대통령의 집으로 전화 걸었지만 직접 받는 일이 다시는 없었다고 하네요.

최근 저는 서울 삼성동 인근 식당에 점심 약속을 나갔다가 같은 장소에 식사하러 온 이명박 전 대통령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자원외교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 시작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자로서 이 전 대통령에게 물어볼 게 많았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식당의 별실로 들어가길래 출입구가 잘 보이는데 앉아 뭘 물어볼지 정리하며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나오길래 뒤따라가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이 어떠십니까?”라고 물었지만 경호원에 가로막혀 이 전 대통령에게 가까이 가지는 못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자네 어디 신문사야?”라며 나무라듯이 물었고 아쉽게도 다른 대답은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장을 떠나버리더군요.

기자가 기관장 인터뷰에 목을 매는 건 기관장이 그 조직의 일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기관장이 말해주는 내용이 항상 정확한 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고용노동부 출입을 하던 2013년 당시 방하남 전 장관을 청사 앞에서 만나 ‘고용률 70% 로드맵’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로드맵은 아직 공식 발표 전이었는데 어떤 내용이 들어갈지 물어보자 방 전 장관은 대답을 시원하게 해줬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방 전 장관이 대답해준 내용이 틀렸더라고요. 일부러 거짓말한 것 같지는 않고 잠시 뭔가 헷갈리셨던 것 같아요.(끝)

오늘의 신문 - 2024.04.27(토)